소설과 역사 사이 - 우리가 서 있는 자리
#. '흑산'의 얼굴들.
김훈 작가의 글은 짧지만 묵직하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때로는 그 짧은 문장과 단어 하나에 잔혹한 현실이 생생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신호등 앞에서 자꾸 멈추기도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게 된다. 이번에 읽은 '흑산'은 마치 제한속도가 정해진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정약용의 배교, 정약종과 황사영의 죽음, 박차돌이 신자로 위장해 밀정 활동을 하면서도 죄책감과 공포 사이를 허우적대는 숨 막히는 장면까지. 결코 과속을 할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일까, 아니면 작가의 상상일까?"라는 질문이 읽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그 배경에는 분명한 역사적 무대가 존재한다. 1801년 신유박해,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 오가작통법, 서슬 퍼런 정순왕후의 정치, 그리고 황사영 백사 사건 등, 이 몇 개의 키워드를 이해하고 소설을 읽다 보면 '흑산'이 그려내는 다양한 얼굴들이 훨씬 또렷하고 처절하게 다가온다.
#. 1801년, 신유박해의 무대
개혁 군주의 아이콘 정조가 죽고(1800년), 열한 살의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른다. 조선의 권력 지형이 요동친다. 권력은 당시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었던 정순왕후 김씨에게 넘어간다. 정순왕후 김씨는 만 15세에 51세의 연상인 영조와 결혼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커플이다.
수렴청정을 시작한 정순왕후는 노론 벽파와 손을 잡고, 정조 시대에 영향력을 키웠던 남인·소론 세력, 그리고 그들 사이에 퍼져나가더 천주교 세력을 '한 번에 쓸어버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바로 그 피의 카드가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辛酉迫害)'이다.
사학(邪學)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파괴하고 도리에 어긋나니... (중략)... 수령은 각각 그 맡은 바 지방에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밝게 실시하여, 사학의 무리가 있거든 곧 관에 고하여 죄를 다스려 사학을 뿌리째 없애버려 남은 씨가 없게 하라. -<순조실록> 2권, 순조 1년(1081년) 1월 11일 기사-
정순왕후의 이 하교는 천주교를 단순히 이단적인 학문이 아니라 국가를 위협하는 '반역죄'로 규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승훈, 정약종 등 지도자급 인사들의 처형과 유배 등 대규모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때 국가가 동원한 잔인한 방법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이었다. 다섯 집을 하나의 '통'으로 묶어, 그 안에 천주교라는 이상한 사상을 가진 자가 있으면 관청에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하는 감시 시스템이다. 이웃이 이웃을 감시하고, 친척이 친척을 의심해야 살아남는 구조를 국가가 공식 제도로 만든 것이다. 소설 속 곳곳에 묘사되는 수많은 밀고와 배신의 장면들은 단지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이런 시대적 공포 속에서 실제 벌어졌던 참혹한 현실의 반영이다.
역사는 신유박해를 '사학 척결'이라 평가하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을 재편하려는 차가운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에 균열을 내는 세력을 향한 공포의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의 근간인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려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적 방어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권력이 정의의 이름을 빌릴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1801년 한양에서 목격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숫한 역사적 장면들이 목격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 황사영 백서 사건
신유박해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황사영이다. 정약현의 사위이기도 한 그는 박해가 시작되자 충청도 제천에 있는 베론의 깊은 산속 토굴로 숨어든다. 그 어두운 토굴에서 조선 천주교가 처한 참상을 흰 비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이다.
이 백서를 중국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보내서 박해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 백서는 결국 국경을 넘지 못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백서에 서양 열강의 함대 파병까지 요청하려 했다는 내용을 확인하자 발칵 뒤집어진다. 조선 정부 입장에서 이는 단순한 신앙 문제가 아니라 외세를 끌어들여 왕조를 뒤엎으려 한 반역사건이었던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200년의 시간 훌쩍 뛰어넘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습과 기묘하게 포개지는 느낌이 든다. 김훈 작가가 그려낸 이 처절한 여가의 단면을 지금의 현실에 투영해 보면 다음과 같은 묵직한 질문들이 떠오른다. 특정한 신념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국가를 통치하는 행위가 과연 언제나 옳다고 볼 수 있는가? 개인의 신념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경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 배교자의 밀정 - 박차돌은 어디서 왔는가?
『흑산』에는 매우 흥미롭고 복합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배교한 포도청 비장 '박차돌'이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다시 위장해 신자들 틈에 들어가 황사영을 쫓고, 유배 간 정약전의 주변을 맴돈다. 물론 박차돌은 역사 속 실존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수행한 역할은 완전한 허구도 역사의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사 연구를 보면, 몇 가지 전형적인 밀정의 유형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주문모 신부의 입국을 밀고한 한영익, 사돈의 재산을 노리고 지도자들을 고발한 김여삼, 훗날 병인박해 때 수많은 신자를 팔아 넘겨 조선의 유다로 불린 안치구 등.
그들 역시 한때는 형제라 불리던 신자들이었다. 그러나 공포 앞에서, 혹은 이익과 출세의 욕망 앞에서 그들은 동료의 이름과 은신처를 권력에 가져다 바쳤다. 소설 속 박차돌 또한 이들의 밀정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김훈 작가는 박차돌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배교의 공포와 두려움, 생존을 향한 질긴 욕망,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부끄러움과 후회들이 아니었을까?
#. 왜 흑산이었을까?
흑산이라는 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약전과 섬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문뜩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흑산이라고 했을까? 처음에는 그냥 정약전 유배지가 '흑산도'이니까, 그곳에서 『자산어보』를 지었으니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흑산도라는 지명 자체는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서 붙은 이름' 이라고 한다. '검게 보이는 섬, 흑산도', 그리고 '정약전의 유배지' 정도의 1차적 의미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약전 본인은 '흑산'이라는 말을 잘 안 쓰려했다고 한다. 『자산어보』 서문에서 정약전은 “'자'(玆)는 '흑(黑)'이라는 뜻도 있으니 자산은 곧 흑산과 같은 말이다. '흑산'이라는 이름은 음침하고 어두워 두려운 데다가, 집으로 편지를 쓸 때마다 흑산이라 쓰기가 너무 마음이 괴로워 대신 '자산'이라 일컬었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정약전에게 흑산(黑山)은 '너무 컴컴한, 끝이 막힌 섬'이고, 자산(玆山)은 '여전히 어둡지만,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자리'였다. 같은 섬을 의미하는 두 단어에서 감정의 온도차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왜 김훈 작가는 굳이 정약전이 피하고 싶어 하던 '흑산'을 제목으로 선정했을까?
공간적 측면에서, 흑산은 정약전의 유배지인 실제 흑산도를 무대로 설정하여,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세상의 끝에서 맞닥뜨린 절망감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조선의 어둡고 막막한 공기를 묘사하는 어두운 시대의 색깔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교자와 순교자, 밀정과 피해자, 유배된 선비와 섬에 사는 민초들 모두 그 검은 산 위에서 제각각 버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과연 '흑산'인가 '자산'인가?
#. 소설과 역사 사이, 우리가 서 있는 지금
『흑산』을 덮으면서 '이게 사실인가?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인가?'라는 의문이 무의미해졌다. 대신 더 무겁고 본질적인 질문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 야만의 시대에, 나는 과연 누구였을까?"
배교하고 살아남아 안도감과 죄책감에 허덕이는 사람이었을까. 끝가지 신념을 지키다 목이 잘린 순교자였을까. 아니면 흑산의 바다에서 묵묵히 그물을 던지던 창대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 곁에서 두려움에 떨며 침묵하는 수많은 방관자 중 한 명은 아니었을까.
김훈의 『흑산』은 200여 년 전의 시대를 냉정하게 복원하여 지금 이 땅을 밟고 있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는 과연 그 야만의 시대에 누구였을까?
검은 산 위에서,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귀양 갔으며,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그들보다 안전한 곳에서 책을 펼쳐 그들의 이름을 더듬고 있다. 『흑산』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과 역사의 틈새에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끝까지 버티다 사라진 자들의 얼굴'을 정직하게 마주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