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by 미래몽상가

#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법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좋았다"로 끝난다. 그런데 어떤 책은, 덮는 순간부터 내 일상을 다시 편집하기 시작한다. 김영하 작가님의 『단 한 번의 삶』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그의 산문을 처음 마주한다는 사실이, 읽기 전부터 괜히 마음이 설렜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김영하 작가를 '글자'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는 내게 책장 속 사람이기보다, 방송 속 사람이었다. 말의 리듬이 좋고, 삶을 대하는 관점이 남들과 다르고, 어떤 주제든 매끄럽게 길을 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가 글로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잘 몰랐다.


그런데 첫 장을 몇 장 넘기는 순간부터 느낌이 달라졌다. 방송에서 보던 '능숙함'이 아니라, 종이 위에서만 가능한 정직함이 있었다. 말로는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감정들이, 글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그 오래 머무름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요즘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삶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인생의 몇 페이지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어느 장면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어떤 장면은 오지 않았고, 지금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서둘러 다음 장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이 책은 "다음 장"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 연습처럼 사는 '단 한 번의 삶'

'단 한 번'이라는 표현은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순간, 되돌릴 수 없음을 뜻하는 의미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삶을 연습처럼 산다. 언젠가 제대로 할 거라고, 조금 더 준비되면 시작할 거라고, 조금만 안정되면,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그때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 거라고. 하지만, 삶은 이상하게도 늘 "조금만"을 남겨둔 채 흘러간다. 이 책은 그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소리 높이지도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 조언하지 않아서, 더 믿게 되는 문장들

『단 한 번의 삶』이 좋았던 건, 이 책이 나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삶의 팁을 주거나, 훈계를 하거나, "이렇게 하면 행복해진다" 같은 뻔한 결론을 서둘러 내놓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자기 삶의 어떤 장면들을 꺼내어 조용히 펼쳐 보인다.


책 속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쓴 게 아니라,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이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이 말은 ‘겸손한 회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어떤 목표가 나를 규정하기 전에, 하루하루의 반복이 먼저 나를 만들었다는 고백.


‘작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가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자기 정체성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 문장은 결국 이렇게도 들린다.


나는 지금 무엇이 되기 위해 살고 있는가. 혹은 반대로, 나는 이미 하고 있는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그렇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친절한 게 아니라, 친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좋은 사람에 가까워지는 것.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해서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습관과 선택들이 쌓여 나중에야 비로소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것. 그래서 이 문장은, 책 전체의 제목과도 묘하게 연결된다. 단 한 번뿐인 삶은, 어떤 ‘자격증’처럼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이야기, 자신이 지나온 시간의 결, 글을 쓰며 생긴 상처와 습관 같은 것들. 그 장면들을 바라보는 김영하 작가의 시선과 회고하는 방식이 이상할 만큼 솔직하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괜히 허리를 펴게 된다.


여기서 나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진솔하고 솔직한 가족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그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이미 잘 알려진 작가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그에게 '작가 김영하'라는 이미지와 기대를 붙여놓고, 어떤 문장은 칭찬하고 어떤 문장은 해석하고, 또 어떤 문장은 오해할 것이다. 그 모든 가능성을 알고도, 가족의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꺼내놓는 건— 어쩌면 큰 용기였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용기가 자꾸만 마음에 남았다. 문장을 잘 쓰는 능력보다, 문장을 내놓는 태도. 그 태도가 이 책의 진짜 무게를 만든다고 느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산문을 좋아한다. 강한 문장이 아니라, 오래 남는 문장. 읽는 순간 "맞아!"라고 외치게 만드는 문장이 아니라, 며칠 뒤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문득 떠올라 나를 멈춰 세우는 문장.




#. 내 삶의 '내력'을 다시 읽게 만든 책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삶을 설명할 때 대개 업적이나 사건을 꺼내지만, 정작 그 삶을 만든 건 더 사소한 것들일 때가 많다. 어떤 날의 침묵, 말하지 못한 감정, 무심코 선택해 버린 길, 그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낸 이야기들에 억지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단 한 번의 삶』은 그런 것들을 "의미 있는 사건"으로 격상시키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둔다. 그 태도가 내게는 오히려 큰 질문이 됐다.


나는 내 삶을 너무 '성과의 언어'로만 정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나를 설명할 때, 정작 내가 숨겨두는 장면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책을 읽다가, 유독 눈에 들어온 목차가 있었다.

「엄마의 비밀」.


제목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그 비밀이 결국 누군가의 인생 한 켠을 말해주는 단어이기 때문인지—나는 자연스럽게 그 장으로 끌려갔다.


내용을 읽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엄마의 과거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엄마를 '엄마'로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엄마도 분명 한 사람으로 살았고, 나 이전의 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들 속에서 선택하고 견디고 포기하고 꿈꾸었을 텐데.. 나는 그걸 얼마나 들어봤고, 얼마나 알려고 했던가.


부끄럽게도 나는 답을 바로 내릴 수 없었다. 우리는 가족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부르면서도, 정작 그 사람의 "이전 삶"에는 무심할 때가 많다. 밥을 같이 먹고, 안부를 묻고, 필요한 걸 챙기면서도 그 사람이 어떤 계절을 통과해 지금의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엄마의 비밀」은 내게 그런 무심함을 조용히 들춰 보여줬다. 그 장을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내 엄마의 젊은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시간들, 내가 모르고 지나온 표정들, 내가 어쩌면 "그냥 그래"라고 단정했을지도 모르는 사정들. 어쩌면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 것만이 아니라 내 삶을 둘러싼 타인의 삶까지 다시 보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목차가 그토록 끌렸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숨이 차다며 응급실에 가셨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원인을 빨리 찾았고, 응급실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퇴원해 지금은 약물과 통원 치료를 받고 계신다. 지금도 조금만 움직이면 여전히 숨이 차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안정을 많이 회복하셨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가족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였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관심은 어머니에게 집중되었다. 나도 그동안 무심할 정도로 하지 않던 안부 전화를 자주 하게 됐다. 주말 약속은 모두 취소하고,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내려가고 있다.


집안의 풍경도 조금 달라졌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같이 지냈던 딸아이는, 그렇게 싫어하던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스스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짠해졌다. 사람은 늘 뒤늦게 '당연했던 것'을 다시 배우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함께 생겼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걱정하고, 어머니의 몸 상태를 묻고, 어머니가 무리하지 않게 하려 애쓰면서도—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과거가 어땠는지 묻지 않는다. 우리에게 어머니는, 어머니가 된 순간 이후의 존재로 남아 있다. 밥을 차려주던 손, 잔소리하던 목소리, 명절의 분주함, "괜찮다"라고 말하던 얼굴. 그 이전의 시간은 희미하다. 아니, 애초에 질문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어머니는 '어머니가 된 이후'의 어머니일 뿐이고, 그 이전의 시간은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사실. 어머니가 '우리의 엄마'가 되기 전 어떤 삶을 사셨는지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문득, 책의 제목이 다시 내게로 되돌아온다. 『단 한 번의 삶』.

그 단 한 번은 나에게도 해당되지만, 어머니에게도 해당된다. 단 한 번뿐인 어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그 삶의 어떤 구간에서 어머니는 가장 빛났고, 어떤 구간에서 가장 외로웠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 책을 덮고 나서, 내가 결심한 것들

거창한 결심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는, 내 삶을 조금 덜 미루고 싶어졌다. 오늘을 "준비 기간"이라고만 부르지 않기.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시작해 보기.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 감각으로 하루를 점검하기. 내 삶을 '기록'으로 남겨보기. 한 줄이라도. 이러한 결심을 한 결정적 계기는 책 속 한 문장 때문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이 말하는 건 결국, "당신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니 빨리 성공하라"가 아니라, "당신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니 당신의 것으로 살아라"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책 속의 많은 장면과 질문들은 결국 한 문장으로 모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새롭지 않다. 너무 오래된 질문이라서 진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래된 질문이 오래된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아직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 번의 삶』은 그 질문을 답안지처럼 내밀지 않는다. 그저 질문이 질문으로 남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남아 있는 자리에, 내가 내 방식으로 살아낸 하루들을 하나씩 갖다 놓게 만든다. 그게 이 책의 힘이었다.


『단 한 번의 삶』은 큰 소리로 나를 흔들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히, 내가 회피하던 질문을 다시 내 손에 쥐여준다. 그 질문이 불편해서, 한동안 책장을 덮어두기도 했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다시 펼치게 된다.


아마도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걸 진짜로 믿는 일만 미뤄두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그 오래된 질문을 조금 더 정직하게 품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을 멋지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조금 덜 미루기 위해서. 단 한 번뿐인 오늘을, 조금 더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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