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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18. 2023

1<2, 하나보다는 둘이 낫구나.

둘이어서 좋은 이유

아이는 하나만 낳을 작정이었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애는 하나만 낳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나도 자식이 빨리 독립해야 나의 진정한 자유가 완성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의견에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나. 둘째가 생겨버린 것을. 우리 부부는 바로 체념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둘 부모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체념은 했으나 낙담은 하지 않았다. 애는 둘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듣 차였다. 나의 자유인생의 시작이 좀 지연되는 대신 얻는 것도 있겠거니.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고충이야 숱하지만 한 가지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남편은 성격이 유한 편이고 나는 내 성격이 다소 지랄 맞은 것은 환경 탓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살벌하게 난리를 치며 싸워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성격이 지랄 맞은 것은 환경 탓이 아니라 기질 탓이었고 유해 보이는 남편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봉인되어 있던 것이다. 기분 탓인지 우리 애들은 다른 집 애들보다 유독 서로 상극인 것 같고 안타깝게도 나와 남편은 둘 다 중재에 서투르다.


대단이는 오빠로서 참 아량이 넓다. 얼마나 양보심이 투철한 지 동생 몫으로 남겨둔 요구르트를 일부러 동생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생 눈앞에서 홀라당 뺏어 먹는다. 천사 같은 뽀뽀는 곧잘 갑자기 야수로 돌변하는데 눈앞에서 요구르트를 빼앗기는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변신뽀뽀가 내지르는 사자후는 위력이 상당하다. 엄마와 아빠의 연약한 고막은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고 아이들의 싸움은 부모의 분노로 연결되어 파국으로 종결된다.


이럴 때마다 역시 아이는 하나만 있는 것이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독점하고 있던 사랑을 뽀뽀와 나누는 것이 억울한 대단이에게도. 내 것이라고는 별로 있지도 않은데 번번이 오빠에게 뺏기는 불쌍한 뽀뽀에게도.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요구를 채워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이가 하나만 있었다면 얼마나 일상이 평화로웠을지 상상해 본다.




뽀뽀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종이를 오리면서 놀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캐릭터를 선생님이 예쁘게 칼라로 출력해서 주신 모양이다. 뽀뽀가 나를 부르더니 "엄마, 얘 이름이 뭔지 알아?"하고 물어본다.


음.... 엄마가 잘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엄마의 캐릭터 이해도 레벨은 거의 동짜몽, 둘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잘 모르겠는데?"하고 얘기했더니 뽀뽀의 입에서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온다.


"취나물."


??????????????????????????????????????????????????????????????????????????????????????????


"뭐, 취나물?"

뽀뽀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숨을 들이마시고는 큰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다.


"아니~~~취! 나! 무울!"

........................................................................................................................................ 나는 순간 아득해진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보았다.


".................... 취나무울?"

뽀뽀는 울듯한 얼굴로 "아니.... 취나무울...."하고 읊조린다. 비상사태다.


다급하게 대단이를 불렀다. 뭘 하고 있었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단이가 등장한다.

"대단아, 너 얘 이름 아니?"하고 뽀뽀의 종이를 가리켰다. 대단이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대단이가 알려준 이 친구의 이름은

시. 나. 모. 롤.


달큼한 시나본 향이 날 것 같으면서 포실포실 동글동글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다.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내 뇌가 취나물에게 한 톨의 공간도 내어줄 리가 없었다. 반찬가게에서 비싼 시금치나물 대신 취나물을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취나물의 존재감이 커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취나물이라니.. 사오정 엄마는 청력 못지않게 센스도 기준 미달이다. 아직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만 다섯 살 뽀뽀와 나 사이의 소통의 접점은 깜찍한 시나모롤과 향긋한 취나물 사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간극은 첫째 대단이가 채워주고 있다.




아직 둘 다 지금보다 한창 꼬맹이였을 때의 일이다. 가족끼리 함께 놀러 간 곳에서 어떤 형아가 실수로 뽀뽀를 넘어뜨렸다. 평상시 몸이 굼뜬 편인 대단이가 비호처럼 나타나 그 형아를 밀었고 형아의 반격으로 대단이도 뽀뽀 옆에 나뒹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외동형아의 아빠가 참 부러워했다. 자기 동생이라고 저렇게 나서서 지켜준다고.


남매간의 우애를 기릴만한 에피소드는 내 기억에 저것이 유일하지만,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대단이와 뽀뽀는 서로 간의 우애를 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알면 골치 아플 둘만의 계획을 작당모의하며 엄마 눈을 피해서 은밀한 사인을 교환하고 있을지도. 부모 앞에서는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그렇게 남매의 동질감을 쌓아 올렸으면 한다. 우리 가족 중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시나모롤의 세계에서.  


대단이는 엄마와 뽀뽀가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해결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득의양양해졌다. 아무리 또박또박 말해도 계속 취나물거리는 엄마가 뽀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오빠가 나타나 시나모롤을 말한 순간 뽀뽀는 고구마 백 개가 쑤욱 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인 나는 아이가 하나보다는 둘이어서 좋은 이유를 하나 찾아냈다. 세 사람이 한 가지씩은 득했네.

고맙다. 시나모롤.


+++++

그런데 둘 중에 한 명이면 그게 누구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네요. 둘 중에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와 아빠의 생각은 진심은 아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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