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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13. 2023

학습지에 대한 단상

학습지 선생님, 건투를 빕니다.


대단이와 뽀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퉁이를 돌 때 평상시에 보이지 않 현수막이 보이면 나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아이들 하원 또는 하굣길에 맞추어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이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마트 문화센터 앞과 같은 요지에 자리 잡고 있는 그것. 바로 학습지 선생님들의 판촉현장이다.


열심히 판촉활동을 하 학습지 선생님들이 보이면 나는 순간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다른 곳으로 유도한다. 최대한 빨리 걸으며 바쁜 일이 있는 척 지나치기를 시도한다. 나는 적극적인 사람들과의 대화에 매우 약하다. 방심하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 학습지 선생님께 전화번호를 건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습지 선생님들은 역시나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귀신같이 다. 풍선에도 홀리는 뽀뽀에게는 이만한 보석반지를 보여주며 룰렛을 돌리라고 권유하고 그 사이에 대단이는 열심히 학습지 패드를 구경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단 하나, 아이의 학습지 가입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대단이와 뽀뽀는 학습지를 하고 있지 않다. 내가 대단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고 아이들을 교육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학습지는 꽤 비싼 상품이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학습지 회사의 교육프로그램을 구입할 의사가 없다. 초1인 대단이와 만 다섯 살이 안된 뽀뽀의 눈높이에 맞는 학습은 내가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결국 아이들이 학습지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가성비를 따지는 나의 성향 때문이다.


뽀뽀의 문화센터 수업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각은 여섯 시, 학습지 선생님들이 철수하기 직전 더욱 열성적으로 판촉에 돌입하는 시간이다. 그날의 판촉현장에는 필살기가 등장했다. 바로 솜, 사, 탕!

나가서 솜사탕을 사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설탕 알갱이들이 녹아서 실을 이루어 돌돌 돌아가며 푹신한 구름이 되어가는 그 모습에 뽀뽀는 이미 흠뻑 빠져 버렸다. 저 솜사탕을 받아 드는 순간, 나는 큐알코드를 찍고 내 개인정보를 학습지 회사에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솜사탕을 향해 하트를 뿅뿅 날리고 있는 뽀뽀를 억지로 데리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절한 학습지 선생님은 나에게 자녀가 한 명이냐고 물어 오셨다. 나는 이 학습지를 구독할 의사가 1%도 없다. 애써 어렵사리 판촉활동에 나선 학습지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 죄인이 된 기분다. 나는 고장 난 로보트처럼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삐리삐리, 오빠가 있어요."

"어머, 오빠가 몇 살인가요." "초 1인데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학습지 선생님이 오빠가 따로 학습지를 하고 있냐고 물어보자 나는 솔직하게 답을 한다. "삐리삐리, 아니오."

그러자 친절한 학습지 선생님은 "어머니, 그러다 큰일 나요!"라고 진심 어린 걱정을 해 주셨다.

허허, 큰 일을 할 사람으로 보신 것인가. 큰 일을 낼 사람으로 보신 것인가.


보통 엄마들의 학습에 대한 고민은 한글 떼기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는 한글을 떼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엄마들은 아이가 혹시라도 한글을 떼지 못해 또래 아이들에 뒤처져서 학습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릴두려워한다. 내 아이가 앞서 나가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일부라면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것은 대부분이다. 이런 학부모의 불안한 마음이 바로 사교육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

학습지 학습이 바쁜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꽤나 도움이 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글을 떼기 위해 시작한 학습지로 훌륭히 미션을 완료하는 대단이 친구들을 보면 참 대견하다.

하지만 학습지 회사에서 불안한 마음을 자극해 구매 유도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나는 딱히 아이의 학습에 대해 불안지 않은데 평정심을 유지하아이의 학습에 정기적으로 지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큰일을 낼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양하겠다. 불안한 마음을 불식시키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시작한 공부가 내 아이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며칠 전에는 같은 장소에 다른 학습지 회사에서 판촉활동을 나오셨다. 대단이는 말릴 틈도 없이 판촉 부스에 놓여 있는 학습지 패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번에는 독서학습지였다. 다시 고장난 로보트 모드로 세팅이 된 나에게 말을 건넨 학습지 선생님은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을 아는 분이다. 그러나 나는 역시 이 학습지 또한 입할 마음이 없기에 그 분과의 대화가 편하지 않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말에 선생님이 반색하시면서 본인의 자녀도 초등학교 1학년이고 함께 나와 있다고 하셨다. 판촉 활동을 나온 학습지 선생님들은 아이와 함께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저녁식사 하기 직전인 시간 아이를 맡길 곳이 여의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역시나 학습지의 구독료는 나로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대이다. 대충 그 금액의 가치를 아는 대단이도 이제는 예전처럼 학습지하고 싶다고 조르지는 않는다.(그렇다, 나는 아이가 졸라도 끝까지 학습지를 거부한 꿋꿋한 엄마다.) 그날 체험한 학습지 패드가 유아용 프로그램이라 시시하기도 했나 보다.

  

나는 아이가 무언가를 배울 때 집중하는 표정과 자기 것으로 체화한 후 반짝반짝 빛을 내는 그 눈빛을 사랑한다. 비록 신규고객이 되어 드리지는 못했지만 이 날 만난 학습지 선생님이 아이에게 학습의 기쁨을 체험하게 해 주셨으면, 그래서 최고의 매출실적을 올리길 바라본다. 번창하세요.


학습지 대신 문제집을 풉니다.(아주 가끔) 문제집도 되게 비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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