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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11. 2023

8세 아들의 최애 '오무라이스 잼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와 공유하게 된 순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는 꽤 취미를 누리는 사람이었다. 웬만한 개봉영화는 극장에서 다 챙겨보았으며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사들이는 것을 좋아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먼 거리를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아이가 태어나자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됐는데 그마저도 뽀로로 극장판 보물선 대모험 같은 유아용 애니메이션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의 아이와 함께 하며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로망일 것이다. 얼마 있지도 않 친구들도 애 키우다 다 떠나보내서 취미를 공유할 친구도 마땅히 없다. 영화도, 맛집도, 서점도 아이와 함께 갈 그날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 순간이 빨리 찾아왔다.


나는 만화책을 참 좋아했다. 아이들 책만 가득한 우리집 책꽂이에 내가 이전에 만화를 좋아했던 흔적이 아주 조금 남아 있는데 그중 첫째 대단이가 7살이 되던 해 흠뻑 빠지게 된 책이 있다. 바로 조경규 작가의 '오무라이스 잼잼'이다. 오무라이스 잼잼을 탐독하는 7살이라니! 대단이가 조그만 손으로 두꺼운 오무라이스 잼잼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모습이 너무나 뿌듯하고 기특했다. 7살 대단이의 오무라이스 잼잼 사랑은 대단해서 그 이후로 오무라이스 잼잼을 줄줄이 사들이게 되었다. 그 해, 2022년이 끝나기 전에 조경규 작가님께 아이의 이름으로 펜레터를 보내기로 다짐했는데 결국 나의 귀차니즘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목표가 되어 버렸다.


'오무라이스 잼잼'은 조경규 작가가 가족들과 함께 맛의 재미를 일상 속에서 공유하며 삶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웹툰이다. 나 또한 꽤 오랫동안 오무라이스 잼잼을 사랑했다. '오무라이스 잼잼'을 1판 1쇄산 것이 남편을 만나기도 전인 2011년이니 무려 12년이나 지났다. 오무라이스 잼잼카카오웹툰에 현재 309화가 업로드되어 있고 단행본으로는 13권까지 출간됐다. 웹툰계의 전원일기가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그래서 짧은 반바지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종로를 활보했던 아가씨였을 때 구입한 작품을 나의 아이가 팬이 되어 읽고 또 읽으며 신간을 기다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7살 대단이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통해 세상을 많이 배웠다. 해외에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가 짜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문제를 내고 어느 날은 군대에 가기 싫다며 울상을 짓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팔지 않는 프링글스의 이색적인 맛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고 어느 날은 생뚱맞게 깡장을 먹어보고 싶단다.(깡장이 뭔지 궁금했던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먹어 봤다. 대단이, 미안) 8살이 된 지금도 오무라이스 잼잼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아서 학교에서 쓰는 독서록에 오무라이스 잼잼을 1권부터 주르르르 기록하기도 하고 읽은 책을 읽고 또 읽고 무한반복하고 있다. 웹툰으로 연재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비밀이다. 이런 대단이의 애정을 조경규 작가에게 전해 드리고 싶었는데 나란 인간의 게으름이란..!


아이러니한 것은 대단이가 사 들이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마흔 살 엄마는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항상 빠듯하고 할 일은 넘쳤다. 오무라이스 잼잼을 펼라 치면 읽지 않고 쌓아두고 있는 책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고 쌓아놓고 있는 빨래가 왜 나를 방치하냐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대단이에게는 오무라이스 잼잼의 재미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 원조 찐팬인 엄마 외에는. 외식이라고는 설렁탕과 돈가스 빼고 거의 하지 않는 대단이에게 이 식도락 유니버스가 얼마나 기똥차게 재미졌겠는가. 이 재미를 공유하고 싶은 아이의 바람을 모른 척 넘겨왔다. 웃기는 일이다. 그토록 아이와 함께 즐길 거리를 나누길 바랐었는데 정작 상황이 주어지니 나는 그 기쁨을 누리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모처럼 한가했던 일요일, 나는 읽던 책을 덮어놓고 대단이가 읽다가 둔 오무라이스 잼잼 7권을 읽기 시작했다. 만화책도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읽는 나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전에 웹툰으로 읽었던 내용인지라 대체로 익숙했다. 그러나 읽는 내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은 대단이가 그동안 나에게 던진 질문들 때문이었다. 누텔라가 대체 어떤 맛이냐고 묻는 대단이에게 다음에 마트에 가면 누텔라를 꼭 사 오자고 하고는 아직까지 사지 않았다. 리치 통조림으로 만든 할로윈 특제 주스를 만들어 보자고 한 대단이의 제안을 리치 통조림을 쿠팡에서 주문하는 것으로 퉁친 것도 나다. 오무라이스 잼잼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무심함을 제대로 자각했다.

어느 날은 종로에 갔는데 보령약국에서 레모나를 사야 한다고 했다.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를 오무라이스 잼잼을 통해 알고는 동네마트에 입점돼 있는 꽁사부 고로케 가게에서 대단이는 항상 튀김소보로를 고른다. 진짜 리얼 성심당 튀김소보로를 먹는 대단이의 표정은 어떨까? 오무라이스 잼잼을 읽는 시간, 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한편 앞으로 함께 나눌 시간이 자못 기대된다.


내가 아이와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 그 마음 또한 절실하다. 대단이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보면서 엄마한테 툭툭 이야기를 던지며 엄마도 빨리 내가 즐기는 이 세계로 넘어오기를 기대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의 급작스런 질문에 잘 대처하는 척 답하며 아이의 진짜 마음은 못 본 척 넘다. 아이가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꼭 잡아야 한다. 대단이는 지금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고 엄마의 마음도 너와 같다고 이거 진짜 재밌어 죽겠다고 웃어 줘야지.


생리치를 먹으러 중국에 가자고 조르는, 약과와 산과 중 무엇이 오래됐느냐는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식도락 꿈나무 대단이 앞날 오무라이스 잼잼만큼 멋지게 펼쳐지길.


일요일에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읽어야겠다.




'아이들에게 주고픈 것은,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눈과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다.

그리하여 바르게 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 조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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