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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06. 2023

소재고갈 걱정 따윈 집어치워.

나의 일상은 아이들 덕에 파란만장하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주 차이다. 아무도 나에게 주 2회 글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화요일, 목요일에 글을 올려야지.'라고 정하고서는 매일매일을 압박 속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들과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나의 생각이 내 글의 소재인데 오늘 글을 올리고 나면 당장 오늘부터 '내일은 뭘 쓰나?'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목요일에 글을 올리고 나면 다음 화요일까지는 텀이 있어 여유를 찾았다가도 일요일이 되면 '믿을 수가 없어. 오늘이 벌써 일요일이야.'라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그런데 '소재고갈'은 나의 기우였나 보다. 아이들은 매일 제비가 박씨 물어오듯 소재를 물어 온다. 그 소재란 것이 글을 쓰는 나에게는 반가운 것이지만 일상을 사는 현실의 나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다는 것이 아이러니랄까.


대단이와 둘만의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따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엄마로서 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로망이다. 조용한 저녁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책을 읽는 엄마와 아이들.(절대 함께가 아니다. 각자! 따로따로!) 그런데 대단이가 자꾸 말을 건다. 읽고 있는 책에 집중을 좀 할라치면 말을 걸어와 매우 성가시던 차에 갑자기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 체육관에 네임펜이 있어서 1학년 X반 윤대단이라고 썼지."

어처구니가 없어 바라보니 씨익 웃고 있다.

...............................................................

바보 아니야? 

...............................................................

아니 왜 지 이름을 거기다 쓰는 거지? 범인이 현장에 '내가 했지롱~'하고 써놓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 일단 멍해진 내 표정을 수습하고 제일 처음 꺼낸 말은....


"네임펜은 안 지워지는데?"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디에다 낙서를 했냐고 물어보니 단상 위의 연설대에 썼단다. 학교의 체육관은 강당을 겸해서 사용한다. 그 말인즉슨 교장선생님이 강당에서 말씀하실 때마다 '1학년 X반 윤대단'을 보실 것이고 교감선생님이 학교 행사를 진행하실 때마다 '1학년 X반 윤대단'을 강렬하게 의식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아무튼 그 연설대 앞에 선 사람이면 누구나 '1학년 X반 윤대단'이라고 쓰인 낙서를 보게 된다.


친절하게도 2023년 7월 모일, 날짜까지 적었다고 한다. 무슨 관광명소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가.. 

1학년 X반을 쓰지 않고 윤대단만 적었어도 자기인 줄을 몰랐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통에 더욱 어이가 없어진다. 요즘 학교에 애들이 얼마나 없는데 윤대단이 너 말고 또 있냐니까 박땡땡은 두 명이나 있단다. 의미 없는 입씨름을 티키타카로 계속하고 있다.


자신을 대단히 사랑하는 아이 대단이는 자기애를 의아한 곳에서 발현하고는 한다. 의외의 장소에 자기 이름을 써 놓고는 헤벌쭉 웃는 식이다. 네임펜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에 사색이 되는 것을 보면 본인의 행동이 어떤 여파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헤아릴 수는 있나 보다. 물론 후환이 두려웠다면 보통 그런 행동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음... 역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나 내일부터 학교 안 가고 전학 갈 거야." 점입가경이다. 선생님께 혼나는 것이 어지간히 두렵긴 한가 보다. 지워지는 낙서면 본인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애당초 낙서를 하지 말아야 할 곳에 낙서를 한 것이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러나 아이의 영혼은 이미 저 멀리 가 있다. 어딘지도 모를 전학예정의 브랜드 뉴 학교로. 


이미 엎질러진 물.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대단이에게 얘기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전학을 가든 안 가든 이미 너는 잘못을 했고 그 잘못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선생님께 먼저 이야기를 드려 보라고 했다. 이날은 끙끙대며 잠이 들었다. 좀처럼 밤에 자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인데 현실도피의 맛을 처음 알아 버렸다. 


다음날 귀가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냐고. 말 안 했단다. 까먹었단다. 분명 망설이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학교에서 진행하는 '바라봄 프로젝트'의 주제가 '정직'이어서 여기에 글을 써서 선생님께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렇게 전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좀 아닌 것 같다고 직접 말씀드릴 것이란다. 올~~~~다 컸네, 다 컸어!


대단이의 내일이 그려진다. 학교에서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고민한다. 언제 용기를 내서 선생님께 갈지 재고 또 재다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들킬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이제 다시는 엉뚱한 곳에 낙서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아이는 참 더디 자란다.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 타고난 자신의 기질을 장착하고는 각양각색 다른 모양새로 넘어지고 굴러가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어이상실, 현실자각이야 매번 찾아오는 것이니 이제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절대 채근하거나 앞뒤 없이 몰아세우지 말 것. 오늘도 다짐해 본다. 


아이가 끙끙대고 있으니 선생님께 엄마가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요?

.... 아이가 수습하기 어렵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나서겠습니다. 저는 I성향의 모성고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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