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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04. 2023

한 청년을 위한 작은 축제

2023년 여름을 불태우는 바 투더 닥 투더.. 분수!

물놀이 시즌이 시작됐다. 눈이 예민해 눈에 물이 조금만 튀어도 난리가 나는 대단이를 데리고는 부러 물놀이를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나 역시 그다지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더구나 최근 몇 년은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은 기피해야 할 장소였다. 하지만 인생에는 역시 반전이 있다. 둘째 뽀뽀는 물을 보면 물을 잃은 고기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사람이 많은 곳을 꽤 많이 싫어하는 나로서는 아이 둘을 데리고 워터파크를 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돈 쓰면서 멀리 갈 필요가 있나? 우리 동네 워터파크가 드디어 개장했다. 바로 바닥분수!!!!!


일 년 만에 보는 바닥분수의 정경은 작년과 복붙이다. 저녁의 바닥분수는 저녁 8시 한 차례에만 개장한다. 대낮에는 작렬하는 태양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도 뽀뽀를 데리고 항상 이 시간에 나오곤 했다. 밤 시간에는 바닥분수에 나름 휘황찬란한 조명도 등장한다. 춤을 추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사라지는 물줄기 사이를 누비며 아이들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저쪽 구석에는 막 사춘기가 시작된 듯한 초딩들이 화려한 불빛 아래 아니 위에서 빈 말로라도 잘 춘다고 얘기할 수 없는 아이돌 댄스를 추고 있다. 바닥분수를 만난 우리 뽀뽀는 첫눈을 맞이하는 똥개를 연상시킨다. 이리저리 날듯이 뛰어다니며 엉덩이로 튀어오르는 물줄기를 막는 민망한 모양새의 놀이를 혼자 즐기고 있다. 이렇게 바닥분수를 격렬히 좋아하는 뽀뽀지만 동네 바닥분수 8시 요정의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다. 유일무이 참석률 100%를 자랑하는 바닥분수 요정은 커다란 덩치로 바닥분수를 직진으로 종횡무진하는 한 청년이다. 우리 동네 저녁 8시 바닥분수에는 항상 그가 있다.


뽀뽀와 함께 본격적으로 저녁 바닥분수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부터였다. 열대야 직전의 저녁은 집에 있으면 못 견디게 덥고 답답하다. 목욕하기 전에 바닥분수에서 놀면 낮에 분출하지 못한 뽀뽀의 에너지도 빼고 나도 잠시나마 선선한 개천바람도 쐬고 일석 이조였다. 그런데 갈 때마다 그 청년이 있었다. 바닥분수의 모서리에 고여있는 물은 어김없이 발로 차 벤치에 앉아있는 어른들에게 튀겨 빈축을 산다. 의미불명의 소리를 내며 바닥분수를 가로 세로 직진으로 움직이는데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살짝 부딪히기도 하지만 크게 충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8시에 바닥분수가 가동하지 않았다. 5분을 기다려도 10분을 기다려도 바닥분수의 물줄기는 터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바닥분수가 가동하지 않는데 그날은 예보상으로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나 보다. 청년은 한참을 주저앉아 기다리다 쏟아내듯 화를 냈다. 그 큰 몸집에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다 씩씩대며 공원을 뛰쳐나갔다. 청년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기를 살짝 바랐던 것도 같다. 아쉬워하는 다섯 살 아이를 달래서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보다 바닥분수를 애정하는 사람은 그 청년이었을 것이라고.


대단이가 다녔던, 뽀뽀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은 장애 통합 보육기관이다. 뽀뽀의 반 같은 경우 한 반에 정원은 열여덟 명인데 그중 두 명이 특수 아동이다. 대단이는 '지금 여기 있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아이라 기관에서 있었던 일을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4세부터 어린이집 졸업까지 내리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를 제외하면 나는 '다른' 친구의 존재를 아예 몰랐었다. 뽀뽀도 대단이와 비슷하게 기관에서 있었던 일을 그닥 이야기하지 않는 터라 '다른' 친구와 어떻게 지내는지 선생님을 통해 처음 전해 들었다. '다른' 친구를 전담하는 특수 교사 선생님을 많이 도와드려 뽀뽀가 참 기특하다는 이야기였다. 감정중시형이며 적극적인 성향의 뽀뽀는 문만 보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친구에게 달려가는 특수교사 선생님이 저 보기에 안타까워 나섰을 것이다.


대단이와 뽀뽀의 공통점은 그저 그냥 평범한 유아라는 것이다. 이런 유아기의 아이들은 친구를 평가하지 않는다. 소리에 예민한 편인 대단이는 '다른' 친구가 내는 소리를 거슬려했다. 하지만 대단이에게 그것은 어린이집이라는 환경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었다. 항상 자기가 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대단이에게 '다른' 친구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뽀뽀는 선생님이 설명하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라는 말에 살짝 꽂힌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와주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일 것 같은데 선생님을, 친구를 도와주려고 나름 열심인 모양이다. 관심이 없는 것과 도움을 주는 것. '다른' 친구에게 있어 어떤 것이 더 나은 태도일까? 잘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해야 하기에 지금 나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문제들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친구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지칭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그저 내 아이들에게 수년을 함께 보낸 이 친구들이 시간이 흐른 뒤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새삼 궁금해졌을 뿐이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처럼 내 아이들이 '다름'에 대해 그저 무심했으면 한다. 일상의 한 귀퉁이에 다름이 있어도 그저 환경의 한 부분이라 여기며 무심히 지나쳐 갔으면 한다. 다름을 특별함으로 인지하는 순간 다름은 상처받을 수 있다. 다름은 다른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이번 여름 저녁 8시에 바닥분수에 가면 여지없이 그 청년이 있을 것이다. 조명을 반사시키는 형형색색의 물줄기는 아이들도, 청년도 개의치 않고 중력을 거슬러 튀어오른다. 사방팔방 똥개처럼 뛰어다니는 우리 뽀뽀도, 여전히 고인 물을 튀겨대어 빈축을 사는 청년도 그저 자기 몫의 즐거움을 누릴 뿐, 서로 개의치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세상 최고의 이벤트, 어떤 명소보다도 빛나는 축제의 한가운데.


2023년 바닥분수야, 올해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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