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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20. 2023

엄마, 아빠의 싸움에 대처하는 아이의 자세

아이는 솔로몬 아빠는 히어로

일요일 저녁은 다음 날 아침이면 시작될 5일간의 사투에 대한 전투력을 가다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이 시간이 일주일의 피로가 정점을 찍는 순간이 되었다. "월요일에 회사 가서 쉬어야지"라는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주말 내내 애들 수발을 들어주다 보면 1분 1초가 소중한 일요일에도 오늘 하루가 언제 끝나나 시계만 바라보게 된다. 몸은 젖은 걸레처럼 축축 늘어지고 신경은 어느 때보다 곤두서 있다.


이 시간에는 남편 님과의 갈등도 살며시 고개를 든다. 아이들이 어지른 것을 줍고 치우는 와중에 남편님의 잔해까지 발견하게 되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 마련이다. 다 먹고 비어 있는 배달치킨 상자를 치우면서 '끙, 이런 건 도대체 왜 안 치우지?' 하고 속으로 삭이려고 하던 차 싱크대 위에 빈 라면봉지를 발견한 순간 속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남편씨, 이런 거는 좀 치워."


그러자 남편 님이 버럭 성을 낸다. 치우려고 했는데 치우라고 잔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틀을 내내 바닥에 나뒹구는 물건들을 줍고 다녔던 나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남편 님이 1만큼 화를 냈다면 그 백 배로 화를 냈다. 나는 발화점이 매우 낮다. 다만 '사람 같은 사람이 되자'는 일념으로 후천적인 노력을 기울여 아주 조금 발화점을 끌어올려 화를 내지 않고자 버티고 산다. 한 번은 참아도 두 번은 못 참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일단 화가 나면 주변의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홱 돌아가고 고압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남편 님은 이내 조용해졌지만 이 상황을 수긍한 것이 아니라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본인이 일단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이럴 때 두 아이들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열심히 양 쪽의 눈치를 본다.


다음날 뽀뽀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회사에 휴가를 내고 뽀뽀와 단 둘이 집에 있었다. 밤새 열로 끙끙댔던 뽀뽀는 여느 때와 다르게 기운이 없었다. 아직 버리지 않고 물건을 나르는 용도로 쓰고 있던 유모차를 꺼내 아이를 태웠다. 유모차의 무게가 묵직했다. 처음에는 잘 밀리지 않아 유모차 바퀴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어느새 우리 뽀뽀가 유모차에 태우기 어색한 나이가 되었구나. 동네 소아과로 가는 길, 아파도 입은 살아 뽀뽀는 쉴 새 없이 쫑알대고 나는 뽀뽀의 말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 줬다.


돌아오는 길에 뽀뽀에게 말을 건넸다.

"뽀뽀야, 어제 엄마랑 아빠랑 싸웠잖아."    


순간 나는 아빠가 먼저 잘못했음을 아이가 동조해 주길 바라는 알량한 이기심을 느꼈다. 유모차에 타기 어색한 나이가 된 뽀뽀는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았다. 다행히 어른으로서의 자존심이 유치한 마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아 주었다. "아빠가 먼저 잘못했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애써 누르고 다른 말을 꺼냈다. 감정형인 뽀뽀에게 자주 써먹는 말이다.


"뽀뽀 마음이 불편했지?"


그러자 뽀뽀는 "어,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계속 소리 질렀잖아."라고 말했다.

분명히 그랬다. 어제 내가 먼저 성을 낸 남편에게 그 백배로 쏟아붓고 있는 동안 뽀뽀는 나를 향해 계속 악악거렸다. 그만하라는 아이의 신호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아이의 사정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뽀뽀에게 있어 이 싸움의 책임은 먼저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화를 낸 사람에게 있었다. 그냥 일상으로 넘어갈 상황에 아이가 공포를 느끼게 만든 것은 남편 님이 아니라 바로 나다.


아이에게도 한결같이 가르치는 부분이다.

"친구가 너를 놀리더라도 네가 친구를 때린다면 네가 결국 잘못한 사람이 되는 거야. 네가 아무리 억울해도 네가 친구를 다치게 했다면 네가 잘못한 거야. 때리는 것은 절대 안 돼."


아이에게 가르치는 단순한 논리를 나한테 적용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의 억울함이 나에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주말 내내 아이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지,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는 것은 왜 항상 내 몫인 것인지, 왜 나는 이 집에서 제일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인 것인지 나에게는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당연하지 않음과 당연함 사이에서 나는 십 년째 방황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리는 것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도 절대 안 된다. 마음의 생채기도 상처다. 아이의 눈에 누가 먼저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면 상처를 준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남편 님은 이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서며 아이들을 보호했다. 무서움에 무너져 내릴 뻔한 아이들의 마음을 구출한 히어로다. 그리고 그날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빌런이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에 분노를 느끼며 악의 기운을 발산하는 빌런.




이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원 근처에서 본의 아니게 비현실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아이에게 영화에서 나오는 양아치들처럼 쌍욕을 하면서 윽박지르는 아빠를 본 것이다.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아이의 엄마는 경찰이 올 수 있다며 아빠를 만류했다. 아이의 동생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황급히 뽀뽀를 태운 유모차를 돌렸다. 무섭고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두 아이의 우주가 파괴되는 순간을 몰래 훔쳐본 기분이었다.


부디 내 아이들의 우주는 안녕하길.

 

 

출처 : 나무위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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