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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25. 2023

20년 전 가혹의 시대를 돌아보며

기울어진 운동장이 다시 평형을 찾기를

아이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에서도 선생님의 글들을 많이 읽게 된다. 요즈음 며칠은 간간히 새 글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최근 학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비통함과 무력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매년 3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랜덤 룰렛을 돌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이 내 일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선생님의 글들을 읽으니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혹자는 낭만의 시대라고 칭하는 가혹의 시대를 지나 세기가 전환되는 무렵,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귓방망이를 맞아 고막이 터져도 항변할 수 없는 시대였다.


12년의 정규교육을 받았으니 내가 만난 담임 선생님은 최소 12명이다. 그중에 지금도 뵙고 싶은 선생님은 단 한 분뿐이다. 12분의 1이라니.. 너무 안타까운 확률이다. 그 시절 어린 나의 눈에도 교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교단에 서시는 분과 직업인으로서 교단에 서시는 분들의 면면이 훤히 보였다.


다만 학생들을 바른 길로 선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지나쳐 아이들을 더 억압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수업은 완벽하지만 학생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해 아이처럼 뒤에 숨어 계셨던 선생님도 있었다. 사명감과 직업윤리 중 어떤 것에 더 방점을 두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교사 개인의 인성과 역량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 시절 새 학기의 랜덤 룰렛은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이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나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겉으로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만 읽는 아이였지만 툭 건드리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분노를 다글다글 끓이고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는 집어른들이 문제였고 바깥에 나와서는 바깥어른들이 문제였다. 지나가는 여학생의 엉덩이를 발로 차는 남선생님을 보고 교실에서 엉엉 울었고 몇몇 학부모들이 극성이라는 이유로 한 학년 전체의 수업시간을 일 년 내내 공포로 물들인 선생님한테는 치를 떨었다.


어른들이 어떤 제재도 없이 힘없는 아이들에게 부당함을 행사하는데 나는 분개하고 있었다. 이유 없이 엉덩이를 걷어 차인 학생이 선생님에게 사과를 요구했다면 따귀를 맞고 머리채를 잡혔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종류의 두려움에 눌려 숨죽이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세기말 그때 변화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중학교 때 담임은 분노조절장애를 가감 없이 학생들에게 드러내 학부모의 민원으로 3개월 만에 담임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는 아이들에게 삐쳐서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고 창문만 쳐다보며 수업을 했다. 그런 선생님의 옹졸함에 나 역시 수업시간 내내 코를 처박고 교과서만 보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 선생님은 내 동생의 반 수업에서 "니네 누나는 공부는 잘하지만 참 싸가지가 없잖아."라며 유치한 복수를 했다.

세기말의 잔재였던 분노조절장애 선생님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모양이다. 이전에는 용인됐던 일들이 어느 순간엔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학부모의 강성민원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바락바락 외쳤지만 누구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당시의 학생들이 마냥 순종적이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은 수능에 중요도가 낮은 비인기과목임에도 항상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던 선생님을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로 대놓고 조롱한 것도 아이들이었다.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무섭지 않은, 즉 부당함을 학생들에게 휘두르지 않는 선생님들을 함부로 대했다. 선생님의 고고한 인성에 기대 선생님의 마음에 계속 화살을 쏴댔다.


나는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교사를 혐오했고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 아이들도 혐오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가득 차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10대 여자아이의 모습은 참 가관이었겠다. 12명의 담임 선생님 중 찾아뵙고 싶은 분이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나를 찾아올까 봐 나는 비관과 독기로 무지개반사를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사람은 모두 다르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걸어온 자취도 다르고 마음 한편에 짐처럼 가지고 다니는 상처 주머니의 색깔도 다르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가치관 역시 모두 다를 것이다. 교사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면 이렇게 변수가 많은 사람의 됨됨이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어 조치하면 될 일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의 학교는 선생님 쪽으로 확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조금씩 수평을 찾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이십 년 만에 학부모의 입장에서 만나게 된 학교는 이상한 모양새로 다시 수평을 잃은 상태다. 선생님의 팔과 다리를 묶고 입도 막아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안타깝게도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의 수보다 훨씬 많다. 교사가 랜덤 룰렛을 돌리면 불운에 당첨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해서는 안될 일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교사를 보호할 제도가 생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어떤 글보다도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방학을 맞아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올려주신 공지사항이다. 이제 갓 학생이 된 1학년 스무 명과 한 학기를 보내고 난 소회의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보여 준 사랑에 교사로서 즐겁고 행복했다고 하셨다. 교사로서 앞으로를 가늠하는 것이 힘든 오늘도 올해 만난 아이들 덕에 교사로서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남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단이도 담임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께 보이는 애정이야 이루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애정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쌓아 올린 신뢰를 발판 삼아 선생님을 볼 때마다 퐁퐁 샘솟는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나도 참 많이 배운다.


혹시라도 가혹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내 교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학부모가 있다면 그 마음은 과거의 기억와 함께 흘려보내시길.

사람은 모두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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