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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27. 2023

오늘도 화내는 엄마는 우리집 금쪽이

잠깐만요! 금쪽처방 좀 내려 주세요.

이십여 년 전, 잠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 "short fuse"라는 표현을 배웠다.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성미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나는 여전히 내가 화낼 때마다 짧디 짧은 퓨즈에 불이 붙어 타 들어가는 그림이 연상된다. Five thumbs(똥손)과 함께 나를 완벽히 표현해 주는 영어 표현이다.


나의 도량은 사실 간장종지만 하다. 간장종지만 한 도량 가지고는 애 둘 건사하면서 살 수 없어서 냉면그릇까지는 못되더라도 밥그릇정도로는 키워보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런데 간장종지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밥그릇이 될 수 있겠는가. 만만치 않은 아드님과 못지않은 따님을 모시고 사느라고 매일매일 나는 나의 한계를 체감한다.


대단이와 단 둘이 있던 어느 날 저녁, 책을 읽던 대단이가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끼적이고 있는 엄마에게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엄마, 엄마는 내가 몇 살까지 살 것 같아?"

MBTI상으로 트리플 T인 엄마는 순간 2016년생의 기대수명을 빠르게 계산해서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음.. 한 150살??"

"........ 나는 열 살까지 살 것 같아."


뭐지? 옛날 옛적 호환마마보다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가 더 무서웠던 시절에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2016년생이 그 영화를 알리는 만무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니 대단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 잔소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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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지면 나는 내일 죽을 것 같은데?"라고 트리플 T인 엄마는 대꾸했다.


아무튼 이렇게나 잔소리를 싫어하시는 분은 대체로 매일같이 따따따따 잔소리를 안 할 수 없게끔 행동하는 특징을 가지고 계신다. 그럴 때마다 간장종지인 주제에 밥그릇인 양 고고하게 굴고 싶은 엄마는 이를 악물고 "대단아! 대단아!"하고 호출을 한다. 속으로는 '아, 화내지 않고 있다. 나이스하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그러나 불림을 당한 사람은 두문불출하고 식탁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시는 남편 님은 밥 대신 똥을 씹는 표정이다.

'뭐지, 이 기류는?? 나는 분명히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데?'


혼자 앉아서 오리기 놀이를 하고 있던 둘째 뽀뽀가 나에게 이야기한다.


"엄마, 화내지 말고 불러보면 어때?"


뜨끔! 정곡을 찔렸다. 화가 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나는 분명히 화를 내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는데. 물 위에서는 고고함을 유지하지만 물 밑에서 열심히 발을 놀리는 백조처럼 나는 우아하게 화를 내지 않고 있지 않은... 건가?


"엄마 화 안 났는데 화내는 것처럼 들렸어? 그럼 어떻게 부를까?"


"음... 대단앗! 대단앗! 말고 (나긋나긋하게) 대단아~~~~ 이렇게 불러봐."


"....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그래서 대단이는 나오지 않고 있었구나.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나만 빼고 모두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날에는 마음에 화가 1%도 없었을 때 나는 칭찬을 해주고자 대단이를 불렀다.

"대단아! 대단아!"


대단이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알았어, 나가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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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대단이는 지레 엄마가 잔소리를 장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화를 1%도 담지 않고 친절하게 부른 건데 이렇게 억울할 수가.


나는 평상시에도 아이들에게 화난 것처럼 말을 하는 걸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화나서 부르는 소리와 그냥 부르는 소리가 구분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언제 엄마가 따따따따 쏟아 붓기 시작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미리 마음의 준비조차 하기 어렵겠다. 내 딴에는 짧디 짧은 퓨즈에 불이 붙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이를 악물고 했던 노력이 아이들에게는 눈은 부릅뜨고 입만 웃고 있는 더 무서운 얼굴로 보였을 수도. 그리고 원래 다소 퉁명스러운 나의 성격이 화난 상태와 화나지 않은 상태를 분간하기 어렵게 하나 보다.


아.. 현명한 뽀뽀는 엄마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싶었구나.

"엄마, 항상 친절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이 어때?"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나만 화를 안 낸다면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이 확 올라갈 것 같다. 나를 화나게 하는 아이들의 행동도 관점만 달리 해서 보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강점으로 작용할 장점이다. 어른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대단이는 참 주관이 뚜렷하다.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풀쩍풀쩍 뛰어다니는 뽀뽀는 씩씩하고 활동적이다. 말을 참 얄밉게 하는 대단이는 언어구사력이 뛰어나다. 한 순간에 야수로 돌변하는 뽀뽀는 음.. 한 방이 있다? 생활통지표를 작성해야 하는 선생님의 고충이 이런 것인가..


마음을 잡지 못해 집어 든 육아서에는 유대인의 교육법을 소개하며 아이가 못하는 것에 파고들지 말고 아이가 잘하는 것을 칭찬해 주라고 한다. 아이들은 원래 한 번만 이야기해서 듣지 않는다고, 백 번 천 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는데. 열 번쯤 이야기하다 화를 내면 제로 세팅이 되는 건가?

 

서글프다. 간장종지로 태어난 나의 오늘이.

오늘은 진짜 화내지 말아야지.


귀여운 간장종지라도 되어 볼까 출처 : 겟네일드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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