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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ug 03. 2023

칭찬은 엄마도 춤추게 하지요.

감정중시형 딸의 칭찬 요법

우리 둘째 뽀뽀는 인간 비타민이다. 활짝 웃는 미소에 흥까지 장착해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 기역니은디귿 따위 알지 못해도 그저 당당하고 똥, 방귀 이야기에 으하하하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어젖히는 호탕함, 어려움을 겪는 친구는 먼저 다가가 도와주는 친절함까지 그야말로 매력덩어리이다.


둘째는 내리사랑이라던데 뽀뽀가 아기였을 때 나는 뽀뽀가 마냥 예뻐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고달픈 내 인생을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더 힘들게 만든 것 같았다. 뽀뽀는 열 번을 불러도 한 번을 돌아보지 않는 아기였다. 그저 자기 내키는 대로 하고 주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뽀뽀와 함께 있으면 항상 힘을 써야 했다. 어딘가에서 떼어 내거나 몸부림치는 애를 들어서 옮기거나. 그래서 나는 쉽게 지쳤고 쉽게 화를 냈다.


아무리 달래도 달래 지지 않는 뽀뽀의 떼부림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내 왼쪽 청력에 약간 이상이 생길 정도로 뽀뽀의 목청은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우렁찼다. '도대체 나 보고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에 화가 치미는 순간 나의 목청 역시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듯 무섭게 소리 지르며 화내기 일쑤였다.


뽀뽀는 활동량이 엄청난 만큼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항상 넘어선 상태였다. 깨어 있는 동안 각성을 유지하려고 기를 써서인지 자기 전의 잠투정이 실로 엄청났다. 수십 년 전 읽었던 무협소설에 혈을 눌러 헤까닥 잠이 들게 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었는데 무림고수를 찾아가 고것만 배워다가 우리 애들에게 써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뽀뽀는 사실 감정을 달래주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는 아이다. 본인의 서운한 마음, 슬픈 마음, 아쉬운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끝도 없이 운다. 뽀뽀가 말을 못 해 소통이 어렵던 시절에는 엄마가 이걸 깨닫지 못해 하루하루 육아가 지옥이었다. 엉엉 우는 아이만 봐서는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옆에서 귀를 틀어막고 대안을 제안한답시고 "이러면 어때?" "저러면 어때?"를 계속 주저리주저리 말하곤 했지만 그러면 아이는 항상 더 큰 소리로 울었고 말도 잘 못하는 애에게 결국은 소리를 냅다 지르면서 파국을 맞았다.


아이가 쌓아놓은 인형탑이 무너지면 트리플 T인 엄마는 이렇게 다시 쌓아보면 어때? 다른 놀이를 하면 어때? 하며 나름 본인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제안을 제시한다. 그럼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운다. 아오, 이래도 싫다고 하고 저래도 싫다고 하면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항상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악을 쓰며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악다구니가 아닌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엄마한테 SOS를 보내는 건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으니 나 좀 진정시겨 주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안아 주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울음소리가 잦아들면서 뽀뽀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다른 놀잇감을 향해 유유히 엄마의 품을 떠났다.


트리플 T인 엄마가 이해하지 못하는 총천연색 감정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뽀뽀는 말이 안 트였던 시절에는 마냥 야수로 보였다. 잘 놀다가 한순간에 돌변해서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야수. 엄마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예비 금쪽이. 그랬던 뽀뽀가 이제는 능수능란한 언어의 마술사가 되어 엄마를 한없이 행복하게 한다.


트리플 T인 엄마지만 사람이기에 마음이 있다. 뽀뽀는 엄마조차 흘려보내려고 한 엄마의 마음을 유일하게 헤아려주는 단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뽀뽀를 안아주지 않았다면

뽀뽀가 지금처럼 눈부신 미소로 매일을 보낼 수 있었을까?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햇살을 닮은 뽀뽀.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얼음물처럼 청량한 뽀뽀.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사랑까지 듬뿍 받는 비타민 뽀뽀.




오빠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출근시간이 목전에 다다라 마음이 바쁜 엄마는 씽씽이를 탄 뽀뽀를 계속 재촉한다. 열심히 씽씽이를 밀어대며 앞으로 나아가는 뽀뽀를 보고 이야기했다.


"뽀뽀는 엄마한테 정말 보석 같은 존재야. 뽀뽀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 엄마 마음도 항상 헤아려 주고."

모두 사실이기에 나는 항상 기계음 읊듯이 이 멘트를 시도 때도 없이 뽀뽀에게 던진다.


뽀뽀가 갑자기 씽씽이를 멈추더니 쪼그려 앉는 시늉을 하며

"엄마, 잠깐만 이렇게 앉아 봐."라고 한다.


아... 출근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이 무더위에 미친 듯이 파워워킹을 해야 제시간에 갈똥말똥이다.

"뽀뽀야, 엄마가 지금은 시간이 너무 없는데."


뽀뽀는 잠시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그럼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해보라고 하고 앞장선다.


어린이집에 도착하고 출결카드를 태그하러 바삐 움직이는데

뽀뽀가 쪼그려 앉으며 "엄마! 이렇게 쪼그려 앉아야지!" 한다.


나는 끄응.. 한숨을 쉬고 못 이기는 척 쪼그려 앉았다.

내 귀에 작은 요정이 와서 말을 건넨다.


"엄마는 정말 정말 정말 소중한 보석이야."


엄마는 고래가 되어 춤을 추었다.


출처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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