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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n 20. 2023

지랄총량의 법칙과 덕 쌓기

오늘은 어떻게 덕을 쌓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겪게 되는 루트가 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식의 현타가 오고 부모로서 부족한 나를 반성하고 아이와 함께 앞으로 살 길을 모색하는 무한 루트.

오롯이 나로 세상을 살아내기에만 급급했던 나란 존재가 어느 날 뚝 세상에 나온, 내 자식이라는 타인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또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육아의 본질은 이것이구나.

이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때로는 내가 살아왔던 세상보다 더 큰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첫째 대단이는 참 조용한 아기였다. 아기 키우는 집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안 난다고 할 정도였다. 잘 아프지도 않았다. 육아로 인한 수고로움을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면 대단이가 아기였던 시절의 나의 그것은 대단이와 비슷한 또래를 키우고 있는 초보엄마의 평균치에는 못 미쳤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남들보다 수월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위험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말수도 적어서 어린이집에서 언어지연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 대단이가 지금은 쉬지 않고 속사포처럼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세상 수다쟁이가 되었다. 또래보다 언어구사력이 좋은 편인 대단이는 그 언변으로 엄마아빠의 어이를 상실시키기 일쑤다. 


"맛 없으면 누구 책임이야, 엄마 책임이지?"


요즘 대단이와 소통을 할 때면 엄마가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나의 자질이 부족한 것인지, 대단이가 유별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육아란 이런 것인지 매일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을 만나게 된다.





반면 둘째 뽀뽀는 정말 키우기 어려운 아기였다. 걷지도 못하는 아가가 놀이터에 가면 사방팔방 위험한 곳으로 다 올라가고 못하게 하면 난리가 나는 그런 아기였다. 목청은 또 얼마나 큰지 뽀뽀가 차에서 울음을 터뜨리면 그 소음에 혼이 나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얌전한 아이지만 드릉드릉 자아가 생겨나고 있는 첫째도 케어해야 하는 나로서는 혼자 아이 둘을 봐야 하는 상황에서 매일매일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는 월령이 되어서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백 번을 불러도 한 번을 돌아보지 않는 아이가 뽀뽀였다. 못하게 하면 난리가 나는데 그 못하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들이 '차도에 뛰어들지 않기', '미끄럼틀을 거꾸로 내려오지 않기', '바다에 뛰어들지 않기' 같은 죽느냐 사느냐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항상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어야 했고 여차하면 뛰어나가 아이를 잡았어야 했고 어딘가에서 떨어질까 봐 붙어 있어야 했고 그러다 갑자기 생떼를 부리면 완력으로 애를 들어다가 다른 곳으로 끌고 가야 했다.


그랬던 뽀뽀가 지금은 오빠 때문에 날아간 엄마의 뚜껑을 다시 가지고 와 조용히 내려놓는 마음씩 고운 여섯 살 딸아이가 되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유효하다.


대단이를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또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크면서 지랄하고 싶어지는 시기가 당연히 있겠지. 아이가 어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는가?

밤새도록 게임도 하고 싶고 밤도 새 보고 싶고 만화책도 원 없이 보고 싶고 유튜브도 계속 보고 싶고

무엇보다 뭐든 다 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심신이 미약한 어린아이라는 사실에 좌절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는 본인도 누군가에게 분을 풀고 싶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생판 모르는 남한테 그렇게 하는 것보다 나한테 하는 것이 백 번 낫다.


참 다행이다. 

아이가 아무한테나 지랄을 하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 지랄을 해도 받아주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걸어가면서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백 번 얘기해도 "아니야, 걸어가면서 책을 보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흘긋 다시 돌아보면 그래도 보던 책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책을 접고 길을 가고 있다. 그만큼 성장했구나.


나는 하루에 한 가지 덕을 쌓는 것이 나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고 산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 제일 큰 덕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해진 양만큼 지랄을 다 채워야 그만할 것, 덕쌓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겠다.


오늘은 어떻게 덕을 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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