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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n 22. 2023

나는 모성고자입니다.

모성고자의 육아법

어떤 기능에 있어서 현저히 평균보다 못 미칠 때 '고자'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나 역시 고자라고  만큼 기능이 떨어지는 분야가 더러 있지만 대체로 못해도 버틸 수는 있다. 못하면 안 하거나 대체 방안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일매일 나의 한계에 마주하게 되는 고자 영역이 있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성고자인 것이다.


내가 고자라니....


절친한 회사 동기 엘언니가 만삭일 때 나는 20대였다. 엘언니는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를 원을 그리며 쓰다듬고는 함박웃음을 짓고 이야기했다. "우리 딸, 두리 고등학교 보내야지."  순간 엘언니 보건복지부에서 홍보하는 임산부 이미지 완벽히 겹쳐 보였다. 한없이 자애롭고 포근한. 말의 표면적 의미는 차치하고 그 안에 내포된 감정, 그것은 무조건적인 엄마의 사랑이라고 느꼈다.


수년 뒤, 나도 임신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 내가 엘언니를 통해 보았던 뿅뿅 샘솟는 엄마의 사랑은 느낄 수 없었다. 얼굴도 모르고 말 한 번 붙여본 적이 없는 뱃속의 아이에게 나는 그저 무감했다. 그저 이 아이를 무사히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것. 그것이 당시 내가 수행하는 과업들 중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임산부시절 나에게 임신과 출산은 그런 의미였다.


"아기도 다 들어요. 느껴요." 모든 임신 출산 관련 콘텐츠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다. 태중의 아이에게 자꾸 말을 걸어 보라고 하는데 의식적으로 "아가야~대단아~." 해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무지하게 오글거렸기 때문이다. 아기도 엄마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뱃속에서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무사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기검진을 위해 산부인과에 가면 많은 임산부들을 볼 수 있다. 신기했다. 보이지 않는 뱃속의 아이에게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 모습이.


다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건강하게 살 기본기를 갖추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산을 하려고 임산부요가를 매일 다녔고 그 좋아하는 밀가루 음식은 좀 덜 먹었다.(끊을 수는 없었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공부했고 실행했다. 나는 마음으로 절절한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머리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출산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젖먹이가 그저 마냥 예쁘지만은 않았다. 아기는 챙겨줘야 할 일이 산더미인 일 덩어리였다. 때맞춰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역시나 열심히는 했다. 할 수 있는 한에서 모유수유를 하면서 가성비 좋은 분유를 열심히 조달했다. 생각보다 크게 번거롭지 않길래 천기저귀도 사용했다. 아이가 아플 때 아픈 아이가 안타까워 눈물을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 열이 났을 때 행동 매뉴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숙지했다. 그래서 아이가 커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애가 크면 힘이 덜 들어서 좋기만 걸,


'아, 나는 뭔가 결핍되어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은 질문은 아니었다. 내내린 결론은 타고나기를 이런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발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과학적 근거는 찾아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당첨!!!


사랑이라는 언어의 문법은 각기 다 다르다.

아빠의 사랑이 엄마의 사랑과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랑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살아온 궤적이 다르듯 아이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할지 그 또한 다 다를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고 살고 있다. 최대한 아이의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항상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넘어져도 달려가서 안아주지 않지만 내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응원하고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이 내 사랑의 문법이다.

 

사십 줄에 새로 사귄 친구에게 나는 모성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내가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글로 쓰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는 "그럼 나는 모성 븅신이게?"라고 말했다. 그 말이 재밌어서 한참 웃었다. 그런데 나는 진짜 모성고자가 맞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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