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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n 27. 2023

네 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워킹맘에게 알림장이란

바쁜 오후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간, 핸드폰에는 갖가지 알람이 쌓여 있다. 대부분의 알람들을 읽음 처리하면서 넘기는 와중에도 반드시 체크해야 할 것. 바로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올려주시는 알림장 어플이다. 방심하다가는 놓칠 수 있다.


워킹맘에게 아이의 학교생활이란 무심히 넘기고 싶지만 넘길 수 없는 것. 모른 척 슥 지나가고 싶지만 마음 한 켠에서 자꾸 발목을 붙잡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다 챙길 수는 없다.

내 한 몸 회사에 멱살캐리해서 끌고 나가기도 힘든데 아침잠 많은 첫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세월아 네월아 털레털레 걷는 아이의 등을 사정없이 밀어대며 학교로 넣는다. 다리가 아프다며 씽씽이(킥보드)를 엉덩이로 깔고 앉아 기어가는 둘째에게는 미션을 주면서 씽씽 달려 나가게 독려한다. "뽀뽀야, 저기 앞에 씩씩이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

출근 전의 정경이다. 둘을 각자의 기관에 넣어 두고 파워워킹 후 회사의 내 자리에 착석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한숨.


이미 영혼은 출근 전에 탈곡되는데 그럼 온전히 나의 정신이라도 고이 챙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얼마 전에 둘째 뽀뽀의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세상에 제일 재밌는 이야기인 듯 해 주신 이야기가 있다.

뽀뽀의 '엄마' 이행시였다.


'엄' 엄마는

'마' 마따! 가방 안 가져왔다!


나의 정신머리란 것이 이 정도 수준이다. 뽀뽀의 예리한 관찰력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가 아이 학교생활의 모든 것을 다 챙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반드시 챙겨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라도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매일 챙겨야 하는 아이의 준비물인 물통, 필통, 알림장, 가정통신문 넣는 클리어 파일. 교외 체험학습, 방과 후 활동 신청 같은 이벤트들에 대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다행히 어플로 알림이 오는 선생님의 알림장은 아이가 학교에서 손으로 써오는 알림장과 크로스체크가 된다. 문제의 원인은 나의 안이함이었다. 이 날, 나는 어플로 본 적 없는 내용을 아이의 알림장에서 확인했다.


"똑똑 수학탐험대 가입해 주세요. 링크는 어플로 보내드립니다."


처음 접하는 메시지라 링크는 내일 보내주시려나?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확인하게 된 알림장의 내용에 나는 패닉이 되었다.


"똑똑 수학탐험대 네 명이 가입 안 되어 있습니다."


헉! 그 네 명 중 한 명이 바로 나? 아니 우리 대단이??? 대단이의 반은 모두 열여덟 명이다. 그중에 엄마과제를 수행하지 않은 네 명 안에 들어간 것이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알림장 어플에 있는 지난 알림장을 살펴보았다.

못 찾겠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나만 누락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아이의 학급 친구 엄마 중에 소통하는 사람없다. 계속 삽질을 하는 와중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선생님께 다이렉트로 질문을 한 것이다. 솔직하게 링크를 못 찾겠다고 말씀드렸다.


"공지사항에 올려놨습니다."


똑똑 수학탐험대 가입은 중요한 사항이라 일부러 따로 그날의 알림장을 공지사항으로 올려놓으신 것이다. 나는 그날의 어플 알림도 놓치고 공지사항도 놓친 데다 링크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는 아둔한 엄마가 되었다. 네 명 중의 하나에서 온리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네 명 중 하나.

이 네 명이 나를 가리키는 것인지 우리 아이를 가리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학교생활에서 아이는 엄마와 한 몸이다. 아이가 잘 챙기지 않는다면 엄마가 잘 못 챙긴 것이 된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학령임에도 미숙하다면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주어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없게 해 준 것이 된다. 엄마가 없는 아이의 학교생활에도 엄마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아이를 보고 엄마를 그릴 것이다. 이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극성스러운지, 무심한지, 아둔한지, 현명한지.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의 알림장을 열어 보았다.


'똑똑 수학탐험대, 4명 중 1명 나. (나까지)'

라고 씌어 있었다.


"대단아, 똑똑 수학탐험대 엄마가 잘 못 챙겨서 가입 못했는데."

"응, 나까지 네 명 가입 안 했대!"


다행히 아이는 네 명 안에 들어간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은 모양이다.


"엄마가 선생님 알림장 보고 늦었지만 가입을 하긴 했어."

"응, 나까지 네 명 가입 안 했대!"


.................................

멕이는 건가?



엄마도 때때로 실수를 한다. 아니, 엄마도 꽤 자주 실수를 한다. 엄마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이의 몫이겠지만 엄마의 실수를 아이가 너그러이 받아 줬으면 한다. 나부터 아이의 실수너그럽게 받아 줘야지. 그리고 나의 실수는 너무 늦지 않게 사과해야지.


"대단아, 엄마가 이번에 잘 못 챙겨서 미안해. 엄마가 다음부턴 잘 챙길게."

"응, 나까지 네 명..."


아, 그만하라고오..



그래, 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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