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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Sep 19. 2023

나는 오늘도 또 화를 냈습니다.

오늘은 화를 낸 나 자신이 싫지만은 않네요.

"아, 사라지고 싶다..." 육아선배인 절친이 주말에 보낸 카톡 메시지다. 당시 홑몸인 나에게 이 메시지의 의미는 크게 와닿았지 않았다. '죽고 싶으면 죽고 싶은 거지, 사라지고 싶은 것은 뭐지?'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틈만 나면 친구의 읊조림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좋은 날 누릴 때까지 아등바등 대더라도 살아야지, 죽긴 왜 죽어. 다만 땅으로 꺼지든 하늘로 솟든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을 뿐이다. 끊임없이 쌓여만 가는 집안일과 나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아이들.  아, 맞다. 나는 회사까지 나가야지.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면 때 되면 밥 해 먹여야지 틈나는 대로 어지른 것 치워야지, 애새끼들은 잠도 잘 안 자. 좀 크고 나니까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워대. 나를 위한 시간이 한 톨이라도 있기를 바라기 전에 나는 그저 나의 이성을 쥐어 잡고 있는 나약한 끈이 제발 끊어지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 끈이 끊어지면 나는 괴물이 되어 버리니깐.


어제는 그 끈이 끊어지다 못해 나의 이성이 산화된 날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할 틈도 없었고 항상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는 조상님이 데리고 가신 건지 어제는 통 못 뵈었다.


부랴부랴 퇴근해서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켰다. 날이 너무나 더웠다. 더운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낸 나는 오후의 습기에 축축 처진다. 9월에 이런 무더위라니.. 말이 되는 것인지. 잠깐 지구의 안위를 걱정해 본다.

첫째의 하원차량이 도착하는 시각에 맞추기 위해 둘째의 등을 연신 밀어댔다. 하원차량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참 늦게 도착했다. 아이들은 집에 도착하자마 유튜브를 틀어 보았고 나는 저녁밥을 차렸다. 구원처럼 나에게 온 집밥카레 덕분에 이 날의 저녁식사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운동치인 첫째를 위해 구입한 축구공이 때마침 집에 도착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보던 유튜브를 다 보고 우리는 축구공을 가지고 아파트 안 공터로 나가기로 했다. 사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공에 이름을 누가 더 크게 쓰냐를 가지고 실랑이를 하더니 내가 안 보는 사이 첫째는 둘째에게 또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첫째를 다그쳤다. 역시나 무섭게 다그쳤다. 왜 이런 사소한 문제로 이런 난리를 피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여차저차하고는 나갔고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왔다. 첫째는 한참 뛰놀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밤하늘을 바라보고는 아파트 안 공원이 천국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싸기 직전까지 참다가 화장실을 가는 이상한 배변습관을 가진 둘째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첫째는 그네를 탄다고 했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 나는 둘을 데리고 집에 가야 한다는 것에 꽂혔다. 왔던 길을 좀 더 돌아가면 공원 화장실이 있음에도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고 무조건 집에 가자고만 했다. 거기서 첫째의 또 엇나간 타령이 나를 자극했다. 그 엇나간 타령은 첫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공개는 하지 않겠지만 진짜 부모의 꼭지를 돌게 하는 내용이다.


나는 또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집에 가기도 전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집에 와서도 화가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화가 가시지 않아 첫째를 붙잡고 무섭게 다그쳤다. 왜 꼭 그렇게 엄마를 괴롭게 해야 직성이 풀리냐고.


나는 단 한 번도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배울 만큼 배웠으며 나름 벌만큼 벌고 있으며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시간과 돈을 모두 알 수 없는 미래에 저당 잡힌 채 밖에서 돈 벌어오는 부엌데기처럼 살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왜 모든 일이 나에게 주어졌는지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생각해 봤자 원망만 늘어나고 현실은 더 괴로워진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말 그대로 최선이다. 그런데 마른 수건 쥐어짜듯 나를 쥐어짰다가 이제는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독박육아의 굴레를 나에게 떠 넘긴 우리 집의 가계구조, 친정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어 친정엄마의 도움을 은연중에 물리친 과거의 나, 엄마의 사정 따위는 괘념치 않은 무자비한 아이들. 그 결과가 나에게 안겨준 무시무시한 육체노동, 감정노동은 나를 항상 궁지로 몰아간다.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유년기를 보냈던 나는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런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마구 화를 쏟아붓는 내 앞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있는 내 아이가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힘센 사람이 그 힘을 마구 휘두르는 모양새가 되지 않기 위해 엄마의 권력을 아이에게 남용하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내가 과연 강자인가? 아이는 엄마라는 이유로 나에게 끊임없이 요구를 하고 생떼를 부린다.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면서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번번이 실패한다. 나는 항상 나의 작은 그릇을 탓해 왔다. 감정적으로 수용의 폭이 크지 않는 것도, 아이들을 훌륭히 리드하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과연 이게 나만의 잘못일까?


어제 나는 남편이 귀가한 후에도 화를 삭이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엄마를 존중하지 않으면 엄마도 이제 너희를 존중하지 않을 거야. 네가 좋아하는 흔한 남매도 도서관에서 안 빌려올 거야. 이제 나가서 운동도 하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너 하고 싶은 대로 집에서 유튜브나 보고 닌텐도나 해."


제일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 없이 니들끼리 한번 잘 살아 봐."라는 말이 목에서 턱턱 걸렸다. 그저 사라지고 싶은 하루였다.



엄마가 화났다, 최숙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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