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이디버드, 나의 기원

나의 기원은 나의 레이디버드가 살던 바로 그곳이다.

by 영백

'금요일엔 심야영화'는 육아에 매진하느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찾아보는 일종의 여행기입니다. 예전에는 '봐야 할 영화' 리스트가 꽉꽉 차 있었는데 이제는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봅니다. 취미도 긴 시간 쉬다 오니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걸러지고 반짝반짝 즐거움만 남았네요.


다만, 보고 싶은 영화가 금방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특정 연도를 정해 그 해에 개봉했던 영화를 죽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면 '아, 이 영화 진짜 보고 싶었어!' 나도 모르게 보러 가기를 클릭하게 되는 영화를 발견합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렇게 우주 어딘가로 보내버린 것 같았던 나의 시간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이번 여행은 시얼샤 로넌이 사춘기력 폭발하는 여고생으로 등장한, 2018년작 '레이디버드'입니다.





'레이디버드'의 포스터 속 시얼샤 로넌은 중세 시대의 고고한 레이디를 연상시킨다. 사실 '레이디버드'는 1412년이 아니라 2002년에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부모가 물려준 이름이 싫다며 '레이디버드'라고 자신을 칭하는 괴짜.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차에서 뛰어내려 교복의 스타일을 핑크색 깁스로 완성한 못 말리는 여자 아이. 뉴욕을 동경하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새크라멘토를 부정하는 헛바람 든 10대. 이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틴 '레이디버드' 맥퍼슨.


그래, 막상 태어나 보면 선택하지 않은 온갖 것들에 둘러 싸여 있다. 나 역시 1분 1초도 여기 있는 것이 싫어 버둥댔던 적이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내내 비명을 질러댔지. 집에 있어도 습관적으로 '집에 가고 싶어'를 읊조렸던 그때. 내가 말한 집은 여기가 아닌 곳을 의미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 중구 한 복판의 가난한 동네였다. 학교에 가려면 용접공들의 작업터를 철먼지 먹으면서 지나야 하는 곳이었다. 골목 곳곳에는 '미싱, 재봉 시다 모집'이라고 손으로 갈겨쓴 종이들이 붙어 있었고 골목길을 벗어나면 매캐한 자동차 매연이 가득한 시장 거리가 나왔다. 등교할 때 한 번도 숨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울퉁불퉁한 길 곳곳에 구정물이 고여 있었다. 애써 피하고 피해도 걸을 때마다 구정물이 튀었다. 그래서 나는 반바지를 입는 것이 너무 싫었다.


아이들이 흙먼지가 아닌 철먼지를 먹고 자라는 환경에서 살았기에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는 책 속 문장으로만 접해 보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 넘도록 노란 꽃들은 다 개나리인 줄 알았다. 잘 모르기 때문에 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모르게 되었다.


나는 레이디버드처럼 애써 부정하는 대신 이전의 기억들을 항상 흘려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기억들이 모두 흘러 흘러 어딘가로 가버린 것인지, 아무리 기억을 끄집어내려 해도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간간이 떠오르는 기억들은 모두 회색빛이다. 매일매일 흐렸었나? 싶을 정도로.


출근길,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중에 몇 가지 기억들이 퐁퐁 떠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고 한눈에 반해 내내 OST를 들었다. 일기장에 디카프리오를 찬미하는 글로 도배를 해 놓고 하루종일 친구들과 스크린 잡지를 넘겨가며 떠들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유치 찬란한 지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에라고 이불속에 고이 들어가 발로 뻥뻥 이불을 걷어찰 만한 숱한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공부를 안 하고도 척척 좋은 점수를 받는 천재처럼 보이고 싶어서 밤새도록 벼락치기를 한 주제에 공부 한 개도 못했다고 입방정을 떨어 보기도 했고, 이유 모를 질투심에 사로잡혀 단짝 친구를 차갑게 외면하기도 했다. 매 순간 불안감에 흔들렸다. 고작 이런 모습이 나의 최고의 모습이면 어쩌지?


레이디버드는 아울렛에서 엄마와 함께 추수감사절에 입을 옷을 고른다. 엄마가 매의 눈으로 사냥한 옷을 피팅룸에서 입어보며 이래라저래라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잔소리를 하느냐고. 엄마는 "난 네가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원해."라고 말하고 레이디버드는 반문한다.


"만약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싫고 싫어 당장 박차고 일어나 벗어나고 싶은 오늘이지만 그 하루를 생생하게 보내는 레이디버드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흘려보낸 시간 속 나 역시 레이디버드처럼 울고 웃으며 화내고 슬퍼하고 총천연색 칼라로 보냈다고. 매일매일이 흐림? 그랬을 리가! 어느 날은 녹아내릴 정도로 해가 쨍쨍했을 것이고 어느 날은 새파란 하늘에 눈이 시렸을 것이다. 내가 싫어질 때마다 고개를 드는 자책감과 밀려오는 우울감에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았던 나의 십 대. 널뛰는 감정을 꼭 붙잡고 비틀비틀 서 있던 그 시절의 레이디버드 덕분에 나는 지금 이렇게 단단히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틴은 고향을 떠나자마자 깨닫는다. 나의 기원은 그토록 미워하고 사랑한 엄마가 있는 그곳, 새크라멘토라는 것을. 크리스틴은 더 이상 자신을 레이디버드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도 크리스틴을 보고 알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의 기원은 그곳이다. 북받쳐오는 뭔가를 꼴깍꼴깍 삼키면서 어느 한 곳을 노려보는 여자 아이가 숨 쉬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갈망했던 그자리라는 것을. 나의 레이디버드, 그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걱정마, 너의 최고의 모습은 네가 꿈꾸는 대로 이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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