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랑하지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우리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아이들을 깨우고,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각자의 기관에 보내고 난 후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 달려간다. 통근시간이 긴 남편의 사정도 여의치 않다. 전철 안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차오르는 달을 보며 귀가한다. 일하는 엄마의 시계에 맞춰 오후 여섯 시까지 학원을 뱅뱅 돌다 집에 오는 아이들 역시 피곤에 절어 있다. 녹초가 된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느라 집안을 쑥대밭으로 초토화시킨다. 체력이 바닥나 그저 쉬고 싶은 엄마에겐 이 모든 것이 고문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고달픔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소진되고 소진되다 가루가 되는 것 같은 날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그때마다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눈을 뜨면 나갈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케어하고 회사에서 일을 한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또다시 '집으로 출근'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를 빼고 성이 같은 세 명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의 희생과 애정을 자양분으로 취하면서 그게 응당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하는 것인 양 굴고 있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는 것에 누구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나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아."
내내 속에 담고 살아왔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던 말을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들었다. 언어도, 표현도 달랐지만 의미는 같았다.
"난 다른 인생을 원해."
'결혼이야기'는 한때 완벽한 커플로 보였던 찰리와 니콜이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정말 좋아했던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이미 유명한 배우지만 여기서 처음 보는 아담 드라이버가 열연을 펼친다. 이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자, 무려 십분동안 서로에게 악마의 저주 같은 말을 쏟아부으며 분노와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은 명불허전!
'이 사람은 나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서로에게 푹 빠졌던 한때를 지나, 세탁기에 엉켜 돌아가는 두 사람의 빨래처럼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를 견뎌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불편해지는 상황을 피하다 보니 본심을 숨기는데 익숙해지고 미묘히 달라진 상대방의 무드를 눈치챘지만 굳이 끄집어내기 피곤해서 모른 체 해버린다.
힘껏 당겨 올린 활시위처럼 팽팽히 사회인으로 생활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느슨해지고 싶기 마련이다. 함께 있는 사람의 감정보다 나의 컨디션이 우선이 되어 생기는 다툼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아이가 태어나면 더 답이 없다. 부모의 시간으로 자라는 아이. 나의 시간과 그의 시간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균형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추가 기울어진 쪽은 억울해지고 반대쪽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를 배려하지 않는 상대방에 실망하다 보면 나를 사랑했던 그의 마음이 증발해 버린 것 같고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모습 또한 옅어진다. 행복해지고 싶어 이 사람과 일생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함께 있어 행복하지 않다면?
이게 찰리와 니콜의 이야기인지, 나와 우리 남편의 이야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알았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이혼이라는 실패를 겪으며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자신을 내려놓고 참아오다 폭발한 니콜. 아내를 세밀히 살피지 못했던 찰리, 그렇게 미숙했던 두 사람이 이혼이라는 전쟁을 겪으면서 부부라는 관계를 지우고, 함께 살지는 않지만 아이를 같이 키우는 명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사랑해 대신 미안해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왜 깨지고 구르고 다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스스로를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여전히 나의 힘듦에 눈이 가려져 그의 아픔을 보지 못한다. 항상 뭔가에 열중하고 있어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니콜은 자신에 대한 찰리의 나태함과 무심함에 분개하지만 니콜 또한 마찬가지였다. 니콜은 계속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찰리는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제대로, 정성을 들여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않은 것이다.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면 먼저 돌아봤어야 했다. 나 역시 당연시해온 상대의 희생은 없었을까?
그런 니콜에게 내 모습도 투영된다. 항상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고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남편과의 소통을 게을리했던 나. 조금의 시간을 내서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요즘 눈이 가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하늘이 얼마나 예뻤는지, 눈길이 미끄러웠을 텐데 출근은 잘했는지.
살아가다 숨이 턱 막힐 때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고 어떻게 하면 잘 전달될지 고민한 다음 이야기해 보자.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따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감정에 동화되지 말고, 찬찬히. 화내지 말고 차근차근.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을 지구력도 키워보자. 들어줄 때는 나를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만 바라보기. 그냥.. 닥치고 끝까지 듣기.
우리는 말하는 법, 듣는 법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다투기 싫어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풋어른이다. 싸우고 화해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고.. 그렇게 우리 배워가자. 어른이 되자.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