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데 웃기고 재밌기까지 한 영화가 그렇게 흔한 줄 알아?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우연히 작년 여름, '핸섬 가이즈'의 예고편을 보았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이 영화는 재밌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인 예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야 말겠어!
첫 아이가 태어난 2016년 이후, 아이들과 보러 가는 애니메이션 외에는 극장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부쩍 커서 이제 더 이상 뽀로로 극장판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사정이라 애들이랑은 절대 볼 수 없는 영화 '핸섬 가이즈'를 극장에서 보겠다는 결심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남편이 퇴근 후 늦은 식사를 하는 동안, 미친 듯이 애들을 씻겼다. 그러고 나니 금요일 밤 9시 30분, 나는 9시 50분에 시작하는 '핸섬 가이즈'의 마지막 회차를 예매한 상황. 남편에게 통보했다.
"나 영화 보고 올게!"
따릉이를 타고 달렸다. 7월의 어느 여름밤, 열대야처럼 후텁지근한 날씨, 금방 샤워를 하고 나왔음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기분은 더없이 가벼웠다. 따릉이 페달이 신나게 돌아갔다. 영화관 매점에서 맥주를 한 잔 사 들고 불이 꺼진 영화관에 살금살금 들어갔다. 허겁지겁 오느라 너무 목이 말라서 맥주는 원샷을 했다. 그리고 역시나, 영화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핸섬 가이즈'의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 재필과 상구.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험상궂은 인상의 소유자들이지만 마음씨만은 최상위 1%다. 예쁘게 꾸며가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깻잎도 심으려고 야심차게 시작한 전원생활. 재필과 상구의 보금자리에 웬 학생(?)들이 들이닥쳐서는 하나둘씩 꼴까닥 죽어 버린다. 두 주인공은 아연실색. 도움의 손길을 열심히 뻗쳐본들 죽을힘을 다해 뿌리치고 지들끼리 악악 대다 제멋대로 죽어버리는데 막을 재간이 없지.
역시 즐거움은 의외성에서 나온다. 범죄자 몽타주로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를 수습하는 착한 아저씨들의 모습에 애잔함이 밀려온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이거 비싸 비는데? 부동산 아재한테 말해서 전 주인 갖다주라카자." 하는 재필. 아기자기한 취향부자 상구가 설거지를 돕는 미나에게 끔찍이도 깜찍하게 구애의 댄스를 추는 씬은... 눈을 가리고 싶지만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는 마성의 장면이다. 어느새 재필과 상구의 매력에 매료되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악의 무리들(?)이 나도 모르게 미워졌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 악마의 저주를 받아서 하나둘씩 어이없이 희생된다. 재필과 상구 역시 안녕하진 못하다.
"왜 다들 우리 집에 와서 죽고 난리들이야!!"
황당하고 잔인한 내용에 나의 취향, 제대로 저격당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주는 콘텐츠도 많지만 때로는 재미 그 자체가 의미가 되는 영화도 있다. 두 시간 동안 극장에서 혼자 손뼉 치고 배 잡고 눈물 나게 웃었다.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요일 밤마다 들락거린 영화관의 기억이 떠올랐다. 금요일 밤에 보는 영화는 축제 같은 주말을 기원하는 나만의 작은 개막식 같은 것이었다. 놓치면 아쉽기에 매주 개봉하는 영화 중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꼭 챙겨 보곤 했다. 친구와, 연인과, 여의치 않으면 혼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순도 100%의 즐거웠던 순간들.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보고 영화를 통해 발견한 나만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영화를 보면서 의미들을 연결하고. 그렇게 영화에 대한 경험치가 겹겹이 쌓여갔다. 무엇보다 나는 진심 행복했다.
결심했다. 금요일 밤에는 영화를 보기로. 매번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지금은 OTT의 시대, 거실 TV에서 버튼만 누르면 쉽게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 여전히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지만 나를 위해 일주일에 2시간 정도는 낼 수 있잖아? 아닌가? 아니야! 할 수 있다!!!
재밌는 영화를 보면 입이 근질거리기 마련이다. 나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다. 회사 후배들 중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천사 같은 친구들에게 '핸섬 가이즈'의 재미를 설파했다. 대략적인 내용과 설정에 대해 이야기하자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 진짜 재밌는 거 맞아여?"
"야! 무서운데 웃기고 재밌기까지 한 영화가 그렇게 흔한 줄 알아?"
맞아, 무서운데 웃기고 재밌기까지 한 영화는 진짜 보기 드물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정말 재밌어서 못 견디겠는 이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내가 잊고 지냈던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줘서.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아서. '핸섬 가이즈' 덕분에 나는 금요일에 다시 영화를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