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지금 알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인기다 .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도 아이유와 박보검이 유채꽃밭 앞에서 손을 꼭 잡고 있는 풋풋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지금 시청하기'를 클릭했다. 울고 웃다 보면서도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버지와 딸이 배에서 내려 손을 꼭 잡고 걷는 뒷모습이었다. 남편과 딸아이도 가끔 그런 다정한 장면을 연출하곤 하는데 툭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무인지 모르고 끝없이 기어오르려고 하는 딸내미 탓에 아빠의 심기가 불편할 때가 많다. 남편은 아이에게 모질게 하지는 못하지만 서운한 기색은 숨기지 못한다. 그런 해프닝들을 절레절레하며 지켜보다 아빠와 딸이 등장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프터썬>을 골랐다.
<애프터썬>은 어른이 된 소피가 20년 전 11살에 아빠와 함께 했던 튀르키예 여행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소피가 우리집 딸내미와 표정이며 몸짓이며 똑 닮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소피의 시선을 따라 갔다. 호텔의 썬베드 위에 누워 살짝 올려다본 튀르키예의 뜨거운 태양, 부러움에 자꾸 바라보게 되던 호텔에서 만난 언니의 자유이용 팔찌, 아빠의 캠코더에 비친 자신의 얼굴. 열한 살 소피가 난생처음 방문한 여행지에서 보내는 여름은 찬란하게 빛났다. 중간중간 아빠 캘럼의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소피 말마따마 돈이 없어서 그러나 보다 생각하고 넘겼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의 괴로움이 있겠지.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무위키에 올라와 있는 '부녀간의 애틋하면서 감동적인 이야기' 이것이 내가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러닝타임이 다 되도록 애틋함도 감동도 아직이었다. 영화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화면 하단의 바가 짧아질수록 '응?? 이대로 끝나는 건가?' 싶어 슬슬 불안해졌다. 공항에서 아빠와 헤어질 때도 장난을 치는 소피와 그런 소피를 캠코더로 찍는 캘럼. 소피가 비행기 탑승구 안으로 사라지자 캘럼은 캠코더를 끄고 뒤돌아 성큼성큼 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십 년 후 소피가 꾸는 꿈 속으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순간, 나는 이 영화를 완전히 열한 살 소피의 시점으로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영화를 한 번 더 봐야겠다. 빛이라고는 점멸하는 조명뿐인 댄스홀에서 망연자실 서 있는 서른한 살 소피의 시점으로.
아이였기에, 난생처음 와 본 이 여행이 즐거워서, 캠코더를 통해 TV로 보는 내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놓칠 수밖에 없었던 서른한 살 아빠의 심연. 소피가 이십 년 전 아빠와의 여행을 떠올리며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내가 놓쳤던 것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
영화를 다시 보니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고 들리지 않았던 것이 들렸다. 어린 소피의 눈에도 스쳐갔을 아빠 캘럼의 사투의 순간들이. 지친 눈빛, 웃는지 우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어색한 미소, 어쩔 줄 몰라하는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소피와 이야기할 때면 떠오르는 진짜 웃음. 소피는 기억 속 아빠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물음표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무엇에도 가 닿지 못한다. 답을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이제 없기에.
드러내지 않은 사람의 속이 얼마나 깊은지 알 길이 없다. 매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부대끼고 사는 사람의 속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세상에는 많고 많다. 그러니 부디, 괴로움도 아픔도 반으로 한 번씩 더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기를.
이십 년 전의 아빠와 같은 또래가 된 소피의 꿈속에서 여전히 젊은 캘럼이 언뜻언뜻 보인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기도 하는 캘럼에게 다가가 소피는 분노를 터뜨리지만 결국 둘은 부둥켜 안는다. 여행의 마지막 밤 호텔의 댄스홀에서처럼.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남아 있으니까. 사랑하는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