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웰컴 투 더 '좋은 사람' 월드!

by 영백

나 자신을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급적 텀블러를 사용하려고 하고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이 씻어서 배출한다. 동네 어린이들이 뛰어다니는 단지 내 공원에 커다란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으면 어이구, 어이구 앓는 소리를 내면서 끙차! 사람 발길이 안 닿는 곳에 던져 놓는다. 오며 가며 만나는 어린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의 엘리베이터를 누군가 잡아주면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한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었나,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 예전의 나를 돌아보면 좋은 사람보다는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에 가까웠다. 굳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안 입히면 되지 뭐. 라고 생각했다. 좋은 일을 하면서 덕을 쌓기보다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참 많았다. 길에서 타인을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 학생이라고 반말을 하고 윽박지르는 사람, 대단할 것 없는 내 것을 지키려고 다른 사람이야 피해를 입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험난한 시대를 헤쳐온 사람들의 문법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런 사람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진다. 나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데 둔감하고 무심한 사람들과 부딪히면 속에서 천불이 일어난다.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 불편을 끼치려는 사람을 보면 용서할 수가 없다. 전철에서 나를 밀치며 내리는 사람을 있는 힘껏 노려봤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투명인간인 듯 본인 욕심 다 채우는 사람을 보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보세요! 하고 면전에서 따질 만큼 용감하지도 않았다. 속으로 삭이는 만큼 증오라는 감정은 무럭무럭 자랐는데 하루 일과의 마지막을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 날 만난 못되고 이상한 사람들의 품행을 비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미안하다, 친구야...) 참 긴긴 시간 미움으로 날을 세우면서 살았다.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 데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있었다.

"엄마가 되었다."

여자사람, 회사 다니는 사람, 결혼한 사람 기타 등등의 역할 피라미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뚝 '엄마'라는 역할이 제일 꼭대기에 랭크업! 됐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체가능함으로 역할의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면 내 아이들의 엄마라는 자리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었기에.


아이가 꼬물꼬물 신생아일 때는 집 안이 감옥 같았다. 아이와 함께 외출 한 번 하는 것도 참 여의치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얼굴은 항상 우울 그 자체였다. 아가한테 미안해 괜히 한 번씩 밝은 목소리로 아가한테 말을 걸었다. 아가야~날씨가 참 좋지? 우리 대단이 반겨 주려고 꽃이 이렇게 예쁘게 피었네. 내추럴 본 T인 나는 누군가 눈이 내린다고 하면 어? 집에 갈 때 차 막히겠네!라고 말해 분위기를 파사삭 깨뜨리는 유형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아가한테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 없어 입 밖에 내었던 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띵동! 좋은 사람의 세계에 입장하셨습니다.'


회사에 나와 있는 시간을 빼고는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와 나는 붙어 다녔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내 행동거지의 관찰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의식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일상을 아이와 함께 채우는데 익숙해지는 딱 그 속도로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갔다. 뚱함을 인간으로 형상화한다면? 바로 나!! 였던 내가 13층 할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우리집 아이들이 아는 사람을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네길 바라서다. 가끔 아무도 안 볼 때 살짝살짝 했던 무단횡단. 우리집 대단이, 뽀뽀가 무단횡단을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무단횡단 절대금지!! 좀 무겁고 불편해도 가급적 텀블러를 사용하려고 한다. 사무실에서는 일회용 컵을 절대 쓰지 않는다. 일회용품 하나씩 안 쓸 때마다 왠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이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순백의 아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은 곰이 동굴에 갇혀 마늘과 쑥만 먹었다는 백 일을 감히 떠올리게 한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하루하루 열심히 자라준 그 시간 동안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던 미움을 비워내고 그 자리를 사랑으로 그득 채웠다.


육아라는 고행의 터널을 지나며 지금까지도 '좋은 사람 되기'라는 미션은 진행 중이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오만일 수도 있다. 백일동안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처럼 이제서야 겨우 사람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데서 오는 결핍을 좋은 사람이라는 자긍심으로 채워갈 수 있을 테니.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하는 좋은 일들이 시나브로 스며들어 나를 진짜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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