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말 :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

by 영백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 귓가에 속삭이면 뽀뽀는 까무룩 쏟아지는 잠결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부쩍 힘들어하는 대단이를 일으켜 안을 때는 더 큰 소리로 말한다. "잘 잤어? 오늘도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 꼭 껴안고 엉덩이를 두드리면 채 눈을 뜨지 못한 대단이가 배시시 웃는다.


아이들에게 예쁜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집이 편안한 공간이길 바랐다. 먼 훗날이 되겠지만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 후에도 엄마가 있는 곳이 언제든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인생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고단해질 아이들에게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든든한 빽이 되지 않을까? 고함과 분노가 난무하는 집 대신 예쁜 말이 주는 아늑함으로 편안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좋든, 싫든 감정을 표현하는데 참 미숙하다는 것. 어느 정도였냐면 믿음, 소망, 사랑, 감사, 축복... 이런 단어를 들으면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지금보다 더 못났던 시절에는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을 보면 '왜 저렇게 낯뜨거운 말을 하지?'라는 생각도 했다. 시베리아 허스키의 개나리... 욕을 하라고 하면 봇물 터지듯 시원하게 술술 말할 수 있을 텐데 예쁜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단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에게 예쁜 말을 하는 것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건네는 것조차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과묵한 엄마가 되어갔다.


사실 나에게는 집이 편안한 장소가 아니었다. 가기 싫은 곳, 있기 싫은 곳이었다. 아버지가 내뿜는 강압적인 기운에 집에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본인의 감정이 제일 중요했던 엄마는 아이들의 감정을 세세하게 살피지 않았다. 집에서 지냈던 시간동안 무너져버린 마음을 다시 세우는데 꼭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내가 삼킨 비명과 쏟아낸 눈물의 무게까지 더한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경험해 보지 못해 알 수 없다면 책 속에 진리가 있을 것이니. 틈날 때마다 펼쳐 읽던 육아 에세이에서 답을 찾았다. 무슨 책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느꼈던 유레카!의 감각은 여전히 생생하다.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 줄여서 사. 감. 축. 아이가 잠이 들 때, 눈 뜰 때 틈이 날 때마다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라고 말해주는 거다. 매우 종교적인 색채가 배어있는 말이지만 개의치 않았다.(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좋은 말을 가까이하는 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처방이었다.


사랑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은 나로 살아가는 자긍심을 불러 온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치있는 존재다.' 이런 믿음이 정신에 깊게 배어 있는 사람은 단단하다. 사랑받기 위해 다른 조건은 필요없다. 그저 나이기에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런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감사해

아이를 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쁜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온갖 희노애락을 풀어놓는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말 그대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축복해

너무나 사랑해서 너의 앞날을 매 순간 축복한다. 삶을 살아가며1 굽이굽이 넘기 어려운 고개를 맞닥뜨릴 때마다 네가 내딛을 한 걸음 한 걸음을 축복한다. 네가 쏟아낼 땀과 눈물을 축복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네가 잊지 않을 너의 함박웃음을 축복한다.


하루종일 난리 버거지인 일상에서 습관처럼 좋은 말을 해 주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이 잠에 들 때, 아침에 일어날 때만큼은 꼭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에는 입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어느샌가 숨쉬듯 자연스럽게 입에 착 달라 붙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야무진 뒷통수를 쓰다듬으면서 말해 주고, 학교로 달려가는 아이의 뒤꼭지에 대고 큰 소리로 소리친다.


어느 날, 가물가물 잠에 삐져들기 직전인 대단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 감사해. 축복해." 예쁜 말이 아름다운 말로 돌아왔다. 나에게도 나를 사랑하고 나의 존재에 감사하고 나를 축복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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