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안아줄게

대단이가 쏘아올린 '오해'가 '이해'가 될 때까지.

by 영백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이 무너지는 일쯤이야 비일비재하다. 아이가 아기였던 시절에는 아장아장 걸음을 떼다 넘어지거나, 뜨거운 국을 쏟거나,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식탁 위에 올라가 있거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가 자라니 몸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어딘가 다쳐올 일을 걱정하는 빈도는 확연히 줄었다. 다만 아이는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그 아슬아슬한 걸음마를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도 아이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무너진다.


첫째 대단이가 일곱 살 때 어린이집에서 매일 혼자 논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기와 놀아주지 않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종종 떼를 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대단이의 기질 덕을 좀 보았다. 아이는 어쩌다 생각날 때만 본인의 근심을 토로했고 나 역시 그때만 '그렇구나, 속상하겠다.' 했다. 친구가 없어도 어린이집에는 가야 하고, 친구가 없는 아이의 사정을 엄마가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 그저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엄마는 덕을 본 대단이의 그 기질 탓에 대단이는 또래 친구들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단이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 한가운데 있는 대단이는 갈등이 불거질 때도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친구의 실수로 애써 쌓아 올린 블럭이 쓰러지면 화 한 번 내고 넘어가면 될 것을 대단이는 종종 용서할 수 없는 만행으로 비화했다. 동네 친구들이 축구를 하길래 너도 들어가서 한 번 해보라고 했더니 공을 뺏기 위해 달려가는 친구에게 "너 왜 나 밀었어?"라며 공대신 친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불평을 쏟아놓았다.

'....대단아.. 축구는 원래 밀고 밀치는 운동이야...'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득해졌다. 대단이의 친구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될 때까지 갈 길이 구만리겠구나.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축구, 농구 같은 팀운동과도 친하지 않으니 구만리가 아니라 구십구만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저밖에 모르는 아이가 될까 봐 내심 걱정했지만 대단이는 타고난 그대로 착하고 순수한 아이로 자랐다. 1학년 때 대단이의 돌봄 교실 선생님은 2학년을 앞둔 대단이가 다른 선생님에게 이해받지 못할까 내심 걱정하면서도 연을 날릴 때 대단이가 보여 준 극강의 천진난만함을 전해주며 박장대소를 하셨다. 함박 웃으면서 연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는 대단이 뿐이었다고.


할머니가 김밥을 싸서 주면 씨익 웃으며 "할머니~~ 고마워."라고 이야기하고 저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엄마도 먹어보라고 척 내민다. 같은 동에 사는 친구 엄마가 대단이를 등굣길에 만났는데 아이가 학교에 서둘러 가지 않고 할 말이 있는 듯 어물쩍거리길래 뭔가 했더니 대단이가 "저.. 신발 샀어요.."라면서 발을 살짝 내밀더란다. 디자인도 보지 않고 인터넷 최저가로 샀던 운동화였는데 괜히 미안해졌다.


대단이는 대단이니까 여전히 오해를 사고 오해를 한다. 친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간 날, 친구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대단이는 나름 작전을 짰다. 자기가 좋아하는 포켓몬 카드를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 다음, 친구들과 함께 포켓몬 카드로 놀이하는 것이 대단이의 계획이었다. 운동파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려는 비운동파 대단이의 참 대단이스러운 계획이었고 계획은 안타깝게도 완전히 실패했다. 포켓몬 카드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미 유행이 지나간 아이템이다. 대단이는 너희 주려고 샀다는 말도 못 하고 분위기를 살피며 꾸물대다 제풀에 지쳐 카드 포장을 다 뜯어버렸고 졸지에 선물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대단이는 우리 가족의 카라반 안에서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꺼이꺼이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너의 마음만 무너져 버린 이 상황을.


대단이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친구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얽히고 설킨 상황을 해석하는 데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만큼 쉬운 방법은 없다. 만으로 아홉 살도 안된 대단이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번번이 갈등이 생길 때마다 부지런히 오해를 했다. 대단이가 쌓아 올린 '오해'라는 성 안에서 엄마 아빠는 맨날 자기에게 벌컥 화를 내는 사람으로, 동생은 자기 것을 빼앗아가는 존재로, 친구들은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나쁜 아이들이 되었다. 서운한 마음,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 잔뜩 쫄아버린 마음, 얄미운 마음. 자기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대단이 나름의 최선이었다.


대단이의 등을 두드리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친구들이 독심술사도 아닌데 네가 표현하지도 않은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대단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 날, 내 옷이 흠뻑 젖도록 우는 대단이의 등을 쓰다듬다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서운함을 안고 오는 날이면 대단이는 항상 감정 대신 생각을 이야기했다. 조금씩 마음이 무너졌던 그 순간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그것은 철저히 오해에 기반한 것이어서 나는 항상 너의 생각이 틀렸다고 얘기했다. 알게 모르게 대롱대롱 대단이가 달고왔을 눈물방울은 보지 않았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쌓아올리려고 기꺼이 잘못 생각하는 것을 택한 대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단이가 단단해져 마음을 다치지 않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생각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사십 년을 넘게 살았어도 아이에게 답해 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네가 더욱 자라서, 많이 배워서 오해가 아닌 이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 잘못 생각한 것이어도, 속상한 마음이야 틀리지 않았으니까. 무너진 마음쯤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는 거니까. 울고 싶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그 때마다 엄마가 꼭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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