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이의 문제집

결국 대단이를 대단이스럽게 만드는 것은 대단이인 걸.

by 영백

하루에 수학 문제집 두 쪽, 짧은 영어 동화책 한 권. 대단이가 매일 집에서 하는 학습량이다. 학습지는 해 본 적이 없고 교습학원도 다니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엄마표지만 실상 엄마는 하라고 채근하는 역할만 하고 대단이가 알아서 한다. 뭐 대단한 교육철학이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데도 해야 하는 일을 앞에 두면 대단이의 참을성이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할 것 같아서 1학년 때 수학 문제집 두 쪽, 영어 동화책 한 권으로 정한 매일의 학습량이 아직까지 늘지도 줄지도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요즘의 아이들, 아니 나 어릴 때와 비교해 봐도 매우 적은 학습량이지만 늘리지 않는 이유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이다. 그 과정을 겪다가 애도 미치고 나도 미치고 아이와 나의 관계는 풍비박산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찾아온달까.


엄마의 가이드대로 잘 따라와 주는 대단이 친구들을 보면 대단이가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이 치솟을 때가 있다. 집에서 아이의 학습 태도를 잡아 주려 할 때마다 오징어가 되다 못해 버터구이 오징어가 되어 버리는 대단이. '아, 이것이 진정 울화통 폭발 체험인가' 현타가 온다. 공부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것 자체가 이 아이의 고쳐야 하는 점이 아닐까?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수학학원 원장선생님이자 작가인 서농쌤 님의 수학독서대화 챌린지에 손들고 참여했다.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대단이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차피 매일 푸는 문제집, 미션이라면 환장하는 대단이가 스스로 주 4회 공부한 것을 인증하면 새로운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일 나만 보며 분을 삭이고 있었던 대단이의 문제집은 인증사진으로 단톡방에 공유되었다. 성심껏 피드백을 해 주시던 서농쌤 님은 보다못해 대단이에게 편지를 남기셨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학습태도를 걱정하는 서농쌤 님의 진심이 느껴져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들이 대단이의 생각을 못 읽어도 괜찮을지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은 대단이의 글씨를 읽지 못해서 문제 만들기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단이에게 서농쌤의 편지를 보여주니 그날의 글씨는 좀 나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알림장의 글씨는 삐뚤빼뚤하고 문제집의 여백은 낙서로 가득 채워졌다. 대단이의 기질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엄마인 나일 것이다. 말은 또래보다 월등히 잘하는 대단이지만 자기만의 이유가 생길 때까지는 뭐든 쉽게 따라오는 법이 없었다. 문제집을 풀 때도 낙서를 해대는 것은 잠깐의 집중도 유지하기 어려워서일 거다. 공상을 즐겨하는 대단이의 특성상 문제집의 여백은 어느새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공간이 되어 대단이의 캐릭터인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모험이 펼쳐진다. 지루한 문제 풀기 중에는 공상의 유혹을 참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대단이로서는 참아야 하는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대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태도를 가르치고 싶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항상 경청하고 또박또박 바르게 글씨를 쓰고, 바른 자세로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말 그래도 성실한 학생으로서의 태도였다. 그런데 참관수업에 가보니 대단이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날아다니고, 자세는 어찌나 잘못됐는지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비뚤어졌다. 조바심이 잔뜩 든 나는 집에서 대단이의 글씨를 훈육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애써 쓴 글씨를 계속 지우면서 다시 쓰라고 다그치는 엄마의 기세에 못 이겨 대단이는 끄아아악 소리 지르면서 울다가 독서록에 다 엑스자를 그어 버렸다. 뭔가 엄청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 길로 대단이의 글씨 지도를 중단했다. 아이들의 단정한 글씨를 강조하시던 1학년 담임 선생님도 내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니, 대단이는 그냥 두세요."라고 하셨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지만 대단이를 9년 남짓 키우면서 1학년 담임 선생님의 그 말씀이 대단이에게는 정답이라는 것을 매번 확인했다. 과연 될 것인가? 반신반의했던 일들도 대단이는 자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거짓말을 왜 해야 하냐며 눈치 없이 팩폭을 일삼던 아이가 3학년이 되자 친구의 마음이 상할까 봐 하얀 거짓말도 하게 되었고(그닥 잘 놀지 않는 친구에게 "친구야, 너와 두번째로 친해."라고 말을 했다. 이 때, 나는 대단이가 처음 걸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육아의 환희를 경험했다.) 교회 달란트시장에서는 자기 달란트를 다 털어서 엄마 선물을 사 오며 우리집 선정 우리 동네 최고 효자로 등극했다.


회사 동료 중 누군가가 아이 키우기 힘들다며 푸념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아들, 딸이니까 좀 수월하지 않냐며. 아들 둘 키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는 의미였다. 내 대답은 "딸인 둘째는 아들 같고요. 첫째는.. 외계인 같아요." 은하계 너머 어느 행성에서 왔을 법한 우리 대단이. 내가 살아온 세계의 언어와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우리 대단이. 그런 대단이를 스스로 배울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나의 언어를 가르쳐줘야 할지 아니면 그냥 대단이만의 언어를 사용하게 그냥 둬야 할지 매일매일 혼란스럽다.


우리집 아이들은 왜들 그렇게 알록달록 자기만의 색깔로 울트라 칼라풀한 걸까. 오늘도 엄마아빠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은 것 같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다스리며 돌아선 순간 불현듯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애써 아이들의 기질을 존중해서 키워왔다. 나름 최선을 다해.


내가 아이의 기질을 거스르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이를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라도 아이가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엄마가 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고쳐 주셔야 해요."라는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어제 새벽에는 참여하는 그림책 모임을 통해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났다. 작가의 말이 혼란스럽던 내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잘 이끌어 주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들의 고유한 개성이 그들이 누구인지를 만들어 주죠. 이 다양한 성격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서로를 보완하며 균형을 이루어 갑니다."


대단이의 공상이 대단이를 어떤 곳으로 데려갈지,

대단이가 읽은, 읽을 많은 책들이 대단이에게 어떤 세계를 선물할지,

대단이의 착한 마음이 대단이의 사랑을 어떻게 키워갈지

감히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기다려주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바로 이 책입니다.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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