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다호>와 음악 <Candy Says>가 청춘에게 전하는 위로
요즘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순간을 자주 봐.
어두운 방에 옅은 빛이 슬그머니 침범할 때가 되어서야 잠을 자.
'긴 낮'을 살았을 너는, 이 밤 어디쯤에서 잠들었을까.
영화 <아이다호>에서 고아가 된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고향 아이다호를 떠나 포틀랜드 사창가에서 남자들을 상대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를 사는 마이크의 고민은 단 한 가지다. 긴장하면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기면 발작증’을 앓고 있는 것. 이 병 때문에 마이크는 매번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그런 마이크를 수습하는 건 스콧(키아누 리브스)이다. 마이크는 항상 자신을 챙겨주는 스콧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스콧은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금수저였다. 하지만 부친에 대한 반발로 가출해서 방황하는 청춘이 된다.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돈만 주면 남자든 여자든 사랑하는 척할 수 있다. 어머니를 늘 그리워하는 마이크를 보며 스콧은 자신에게 없는 부모에 대한 사랑을 동경하게 되고, 마이크의 어머니가 있는 아이다호로 마이크와 함께 떠난다. 둘은 아이다호를 향하며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그 후엔 태초부터 다른 서로의 운명을 확인할 뿐이다.
가볍고 단순한 것들만 곁에 두고 조금이라도 무거워진다 싶으면 기절해버리는 마이크. 부유했던 자신의 운명도 내던지며 삶에서 무거운 의미를 찾아가는 스콧. 마이크가 기절을 통해 '짧은 밤'을 갖는다면, 스콧은 그런 마이크를 돌보며 '긴 낮'을 산다.
여기서 Velvet Underground의 'Candy says'를 들어볼까 한다.
주인공 Candy는 스콧의 '긴 낮'을 살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긴 낮'은 참으로 고달프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회전하는 생각들, 그 위를 타들어가듯 내리쬐는 태양빛. 그녀를 둘러싼 시끄러운 소음들, 그보다 더 시끄러운 고독. 알 수 없는 그녀의 마음들, 딱 그만큼 후회하는 행동. 어제와 똑같이 불행뿐인 하루들, 이 밤이 지나면 기필코 행복하길 바라는 내일. 안타깝게도, 그녀의 예상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긴 낮'에는 잠깐 앉아 쉴 그늘 하나 없다. 오로지 세상 전체가 그늘로 물든 밤이 올 때까지 버틸 뿐이다. 마치 청춘들의 낮처럼.
그러나 Candy는 '긴 낮'의 불행 덕에 행복할 수 있다. 길었던 낮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밤이 피어오르니까. 길면 길수록,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행복한 밤일 거다. Candy는 어깨 위로 날아오르는 파랑새를 지켜본다. 어김없이 '긴 낮'을 보낸 Candy는, 그녀를 지나치는 새들을 보며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더 나이가 들면, 뭘 보게 될 거 같아?
만약 내 몸으로부터 내가 벗어나게 된다면.
마이크가 기절해서 본 건 무엇일까. 마이크는 기절하지 않고서 '긴 낮'을 버틸 수 없다. 기절해 누워 있으면 사랑하는 스콧이 데리러 오니 그만큼 좋은 대처법이 있을까. 그러나 '긴 낮'을 외면한 대가는 혹독하다. 아이다호에 있을 거라던 엄마도, 언제까지나 자신을 챙겨줄 거라 믿었던 스콧도 저 멀리 떠나간다. 마이크는 기절하기 전에, Candy가 지켜봤던 파랑새를 찾아냈어야 했다.
영화는 내내 몽환적이지만 거칠다. 그 속에서 방황하는 두 주인공이 그런 점에서 우리의 청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다호에 도착했지만 찾을 수 없던 마이크의 엄마처럼, 청춘들의 하루를 채우는 건 행복할 거란 기대뿐이니. 그럼에도 청춘은 행복해야 하기에, Candy가 지켜볼 파랑새를 찾아내야 하기에, 불행뿐인 '긴 낮'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있지도 않을 행복을 좇으며 마이크처럼 쓰러지기도, 스콧처럼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수도 있다. 그런 무거운 '긴 낮'을 보내는 청춘들에게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를 건네고 싶다.
‘have a nice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