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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비누 Jul 26. 2019

돌아갈래, 입에 문 박하사탕이 녹기 전에

영화 <박하사탕>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주인공 영호(설경구)는 20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열리게 된 야유회에 불쑥 나타나 '나 어떡해'를 부른다. 초대되지 않은 손님 영호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야유회 사람들은, 그를 떼어내고 무리를 지어 트로트에 춤을 춘다. 영호는 무리 속에서 춤이라기보다 몸부림에 가깝게 허우적 대다가, 갑자기 강가에 들어가 괴성을 지르는가 싶더니, 급기야 철로 위에 올라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른다. 그러곤 유명한 대사를 날리며 기차에 몸을 던진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게끔 만든 것은 누구인가. "피 같은 내 돈 다 날려버리고 깡통 차게 한 증권회사 직원 새끼 죽여버릴까. 사채업자 그 흡혈귀 같은 새끼 죽여버릴까. 아니면 동업한다고 해놓고 사기 치고 도망간 친구 새끼 죽여버릴까. 이혼한 마누라랑 애새끼랑 같이 죽어버릴까..."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딱 한 사람만 죽이고 가겠다던 영호는 결국 그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 영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영화 속 시간을 과거로 거스를 때 등장하는 기찻길 위에서 자신의 몸을 기차에 던지는 것뿐이었다. 영호가 시간 여행을 하며, '나 어떡해'의 가사처럼, 왜 남 탓만 하게 됐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7개의 Chapter로 이루어진 이 영화 속 영호는, 매번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무리에서 깽판을 쳐댄다. 하지만 첫 번째 야유회에서 그랬듯, 영호의 깽판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철로 위 영호를 보며, '한강에 올라간 99.9%의 사람은 안 죽는다더라'라며 무시한다. 20년 전에 비해 세상과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는지, 그들은 개인의 순수보다 세상의 현실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물론 그때 한 사람이 달려와 말리지만 그 역시 개인일 뿐, 끌어내릴 힘이 없다. 영화는, 세상 앞에 개인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보여주는가 싶더니, 영호가 얼마나 살고 싶어 발버둥 쳤는지에 시선을 돌린다.


삶은 아름답다.

영호가 형사를 그만두고, 제법 돈도 많이 벌어 성공한 인생처럼 보였던 Chapter의 제목. 이 당시 영호는 자신의 부인이 외도를 한다고 믿고 심부름센터에 미행을 맡기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 걸까, 부인의 외도가 발각돼 쫓아가 깽판을 치고, '한 건 해냈다'라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무실 경리를 불러 외도를 한다. 일도 가정도 자신의 뜻대로 되어가니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일까? 영호는 경리와 함께 있던 식당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짧은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화장실에서 다시 만난 그 남자에게 영호는 묻는다.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

삶이 아름답냐는 질문에 다시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독재정권에 학생운동이 반발했던 87년의 영호가 등장한다. 당시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매웠던 학생들을 잡아다 무참히 고문하는 형사였던 영호. 식당에서 만난 그 남자도 그때 고문을 했던 학생이었다. 끔찍한 고문 후에 실토를 한 그 학생에게 영호는 묻는다.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전 Chapter에서 똑같은 그 남자에게 했던 질문과 같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작에 실토했으면 고생 안 했잖아'라는 말을 하며 우는 학생에게 휴지를 넘기는 영호. 나름 죄책감이 있던 걸까. 이번에도 한 건 해낸 듯 동료들과 술집을 찾고, 그곳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너 미성년자지? 여기 뭐하러 왔어. 뭐 팔러 왔어. 돈이 그렇게 좋아? 내 말 잘 들어. 다시 한번 이런 데서 나한테 들키면 가만 안 둬. 알아들어?" 학생을 무참히 때리며 고문하던 그 형사가 할 말인가 싶다. 지독한 고문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영호가 이번엔 무언가를 느낀 걸까. 자백을 통해 가게 된 군산에서 잡은 다른 학생에게는 차마 폭력을 가하지 못한다. 돈이 전부이던 때는 외도를 하며 삶은 아름답다고 착각했던 영호. 이 당시에는 세상에 맞춰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을까? 영호에게 세상에 맞춰야만 하는 아름다움을 준 심어준 건 무엇이었을까. 


부대 차렷!

시간은 더 과거로 흘러 80년 광주. 역사적으로 가장 큰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당시 영호는 군인이었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돼 모든 것이 서툴었던 영호는,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려던 여학생을 만난다. 다른 군인들에게 들키기 전에 돌려보내려고 위협사격을 하다 그만 여학생을 쏘고 만다. 


사실 영호는 형사였을 때, 첫 고문을 잊지 못한다. 의도치 않게 쏘고 만 여학생이 생각나서인지, 남을 고문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맞지 않는 일 같다. 고향 사람들도 영호가 왜 어울리지도 않는 형사 일을 하는지 의아해했다. 첫 고문을 하며 손에 오물을 묻힌 영호. 더러워진 손을 씻는데 선배가 한 마디 한다. "그 냄새 잘 안 빠져" 한 번 더러워진 손을 보며 앞으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걸까. 영호는 다시 한번 무리에게 깽판을 친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한 트라우마를 심어 준 군대 제식 명령을 하며. 이제 영호의 모든 과거는 한 곳으로 모인다. 순임(문소리)으로.


박하사탕 좋아하세요?

"이거 기억나요? 박하사탕... 나 옛날에 군대에 있을 때 순임 씨가 이거 보내줬죠? 편지 한 통 보낼 때마다 하나씩 넣어가지고요. 그거 지금까지 다 모으고 있었어요."

죽기 나흘 전, 새벽부터 의식이 없는 순임을 본 영호가 흐느끼며 하는 대사다. 영호가 깽판을 치는 이유는 모두 순수한 사랑으로 표현되는 순임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일찍부터 등장하는 순임을 이제야 불러낸 것은, 사실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순임은, 영호가 권총으로 자살을 마음먹었을 때, 형사로서 고문으로 얻어낸 자백을 통해 순임의 고향인 군산에 갔을 때, 처음 고문을 하고 더러워진 손을 느꼈을 때, 군대에서 여학생을 쏘기 직전, 그리고 야유회 등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러니 그 시작에 더 집중해야 한다.


순임을 처음 만난 곳인 79년 야유회 장. 처음에 등장하는 야유회와 같은 곳, 같은 사람들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라 있다. 영호가 부르던  '나 어떡해'를 노래방 마이크와 트로트에 취해 있던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부른다. 오히려 영호는 건성건성 입만 움직이는 것 같다. 영화 초반의 야유회에서 영호를 그토록 비참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던 이 노래가 이제 다르게 들린다. 어쩌면 순임이 너무 많이 변해버린 영호에게 하는 말인 걸까? 영호는 자신이 죽게 되는 그 철교 밑에서 혼자 누워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하듯 기차소리와 함께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끊임없이 흐를 것이다. 영호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에 맞춰 개인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게 되는 건 우리 탓이 아닐 거다. 그런 아름다움은 박하사탕처럼 처음엔 달지만 한번 녹아 없어지면 더 큰 맛을 원하게 되는 것과 같다. 영호가 좇던 아름다움은 결코 변해가는 세상에 있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가 변할 때 사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영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번 먹은 사탕의 여운으로 삶을 살기에는 쳐야할 깽판이 너무 많았다. 영호는 영화 내내 사랑했던 순임을 잊지 못했기 때문일까. 우리는 사랑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지 않는가. 


야유회에서 순임에게 박하사탕을 받은 영호는 단 번에 입에 넣는다. 영화 속에서 처음 박하사탕을 입에 문 영호가 이런 말을 한다. "이상해요. 여기 내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옛날에 한 번 와 본 거 같아요." 그런 건 꿈에서 본 거라고 말하는 순임에게 영호는 다시 묻는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순임은 다시 대답한다. "영호 씨 그 꿈이요,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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