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틀에, 내가 갇혔다

part 2. 루틴이 나를 구할 줄 알았다

by youngvocati

나는 나를 세우기 위해 루틴을 만들었다.

흔들리던 하루에 경계선을 긋고, 무너진 마음에 난간을 달았다.

처음엔 그것이 구원 같았다.

규칙을 지키면 나는 무너지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루틴은 내가 붙잡는 밧줄이 아니라

나를 매다는 줄이 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나는 체크리스트를 열었다.

하나씩 지울 때마다 심장은 내려앉았다 다시 뛰었다.

체크한 숫자가 늘어날수록 든든해야 했지만,

오히려 더 조급한 족쇄가 되었다.


놓치면 끝날 것 같아서.


하루를 다 채우지 못한 날, 체크박스 하나는 빈칸으로 남았다.

그 빈칸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결함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밤을 늘리고,

몸을 끌고 나가 운동화를 신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강박으로.


루틴은 처음엔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협박이 되었고, 믿음이 되었다.

나는 시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감시했다.

지각, 식단의 작은 이탈, 운동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모두 규칙을 덧씌워 지워버렸다.


나는 감시자였고, 동시에 죄수였다.


머릿속에 감시탑을 세웠다.

탑은 내 안에 있었다.

달력의 빨간 동그라미, 앱의 체크표,

체중과 체지방률, 유산소 시간과 속도.

철창 대신 숫자가 나를 가두고 있었다.


주변은 말했다. 꾸준한 게 대단하다.

맞다, 꾸준했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것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행동은 늘었지만, 의미는 줄었다.

루틴은 내 하루를 채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비어 갔다.

체크리스트는 박스를 채웠다.

그러나 나는 점점 비워졌다.


살아 있음이 기준이 아니라,

모든 박스를 채웠는가가 기준이 되었다.

의미보다 형식이, 감각보다 기록이 앞섰다.


어느 날, 유산소를 사십칠 분에서 멈췄다.

런닝머이 서자 머릿속이 재빨리 속삭였다.

삼 분만 더 뛰면 스트릭이 깔끔해지는데.

무릎은 오늘 여기까지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완수의 쾌감은 돌아왔지만,

함께 돌아온 건 무릎의 통증이었다.


커피 향은 준비 루틴이 되었고,

산책은 회복 세션으로 기록되었고,

음악조차 집중 배경음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이름을 달고, 줄을 세우고, 기록을 남길수록

사물은 물러나고, 규칙만 남았다.


나는 붙잡으려다 놓쳤고,

지키려다 잃었다.


그날 밤, 나는 일부러 체크리스트를 닫았다.

빈칸이 떨렸다.

공포가 목 아래에서 올라왔다.

이러다 다 무너지면 어떡해.


그러나 나는 속삭였다.

무너질 수 있다. 이제는 무너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나는 일부러 한 칸을 남겨두기 시작했다.

그 빈칸은 실패의 표식이 아니라 숨 쉴 구멍이었다.

처음엔 초조했지만, 조금 지나자 그 구멍을 통해 공기가 들어왔다.


나는 이제 안다.

루틴의 형태를 놓아야 루틴의 의미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문이 없는 틀은 감옥이지만,

문이 있는 틀은 집이 된다.


루틴은 나를 세웠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조였다.


나는 그 모순의 정중앙에서 오래 서 있었다.

숫자와 그래프, 칭찬과 죄책감, 완수와 소진 사이에서.


그리고 마침내 인정한다.


"루틴은 나를 구해줄 수 있다.

하지만, 루틴은 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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