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책이 말해주지 못한 공부의 의미
며칠 전, 책상 위에서 다시 꺼낸 자기계발 책을 넘기다가
예전에 내가 쳐 둔 밑줄들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궁금해하던 건 거의 늘 비슷했다.
- 성공이란 뭘까?
- 잘 산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 나는 어디까지 가야 ‘괜찮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항상 여기로 연결됐다.
> “학교 공부가, 진짜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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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처음 진지하게 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 도서부에 들어가면서였다.
그 전까지 책이라고 하면 만화나 소설이 전부였는데,
도서부에서 책을 정리하다가 처음으로 자기계발 코너를 봤다.
“10대를 바꾸는 공부법”
“성공하는 학생들의 7가지 습관”
“열여덟,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목들이 너무 직접적으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호기심에 한 권을 집어 들었고,
그게 내가 처음 읽은 자기계발 책이었다.
그때의 나는 목적주의가 강했다.
> “그래서, 이걸 하면 뭐가 되는데?”
> “공부를 해서, 결국 뭐가 보장되는데?”
인서울 좋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면
“성공”이라고 불러준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근데 아무리 들어도,
그게 정말 잘 사는 삶과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 “결국 잘 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 십 대 전체를 거기에 다 쏟는 게 의미가 있나?”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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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는 원격 수업으로 바뀌었고,
나는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카메라를 끄고 수업을 틀어 놓은 채 게임을 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졸리면 잠깐 누워 있고,
가끔 생각나면 읽고 싶은 책을 꺼내 보다가
다시 화면 앞으로 돌아왔다.
그때도 가끔 자기계발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는
“1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너를 만든다”
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현실 속 나는
그 말들을 게임 한 판 시작하기 전에 보는 로딩 화면 문장 정도로만 다루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를 나는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거의 비워 둔 시간”이라고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나를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 “공부는 의미 없다”는 말과
> “의미 없는 공부는 하기 싫다”는 말 사이에 끼여서
> 아무것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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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이 되고,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 “대학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야.
> 그래도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제일 큰 일은 공부잖아.
> 학생 신분으로 공부한다고 했을 때
> 사람들한테 응원을 받는 시기는 지금뿐이야.
> 한 번쯤은, 진짜 최선을 다해 보고 싶지 않아?”
인강에서 비슷한 말을 들은 적도 있다.
> “학생일 때 하는 공부는
> 인생에서 유일하게
> ‘열심히 해라’라는 응원을 정면으로 받는 시간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공부 = 성공의 티켓”이라는 공식을 의심하면서
공부의 본질 그 자체까지 같이 밀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공부가 인생 전체를 책임져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 이 시기의 나에게 주어진 메인 미션인 건 맞는데,
나는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애매한 자리만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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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책을 읽을 때의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 “진짜 인생은 학교 바깥에 있다.”
직장 다니지 않고도 돈을 벌고,
어디서든 일하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점점 학교와 교과서를 “덜 중요한 것”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 말하는 삶은
늘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화려하고,
조금 더 “나답게” 보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 공부를 하는 지금의 나는
마치 진짜 인생이 시작되기 전,
임시로 머무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렇게 믿었다.
> “성공이란,
> 결국 학교 시스템 밖으로 얼마나 멋지게 탈출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내가 한 번쯤 인정해야 했던
‘틀린 믿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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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도, 세계 어디를 봐도
“좋은 대학 = 인생 성공”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공부가 완전히 쓸모없다는 말도
왠지 아닐 것 같다.
해부학 교과서를 펼쳐 놓고
근육 이름을 외우는 일,
밤늦게까지 과제를 만들고
발표 준비를 하는 일,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조금씩 느끼는 건 이거다.
> “이 시간들은,
> 적어도 지금의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서
> 끝까지 해 보는 연습이 될 수는 있겠다.”
이 공부가
내 인생의 의미를 전부 책임져 줄 것 같지는 않다.
대학 졸업장이
내 삶의 행복을 보장해 줄 리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여기 앉아 있다.
자기계발 책이 알려주는 “멋진 삶의 모양”과
사람들이 말해 주던 “안전한 길” 사이에서
한참을 맴돌다가,
이제는 조금 다른 쪽으로
임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 “성공의 정의는 아직 모르겠지만,
> 나중에 후회 할 필요 없을 정도로
> 무엇을 하든간에 모든걸 쏟아 붇는 것이
>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가장 성공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뭐가 진짜 정답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 공부를 “성공 티켓”으로만 보지도 않고,
“쓸모없는 시스템”으로만 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 “이건,
>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 최선을 다해 보는 첫 번째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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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 밤,
밑줄이 가득한 자기계발 책과
해부학 교과서가
같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자기계발 책은 여전히
“더 나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해부학 책은
내일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그림들을 가만히 펼쳐 놓고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 학교 공부를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삶을 상상하든가
- 아니면 자기계발 책을 덮고,
“현실에 충실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든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 남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모양도,
> 자기계발 책이 말하는 멋진 삶도,
>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
> 내 답은,
> 이 책상 위에서
> 내가 직접 살아보는 날들 속에서
> 천천히 만들어 가면 된다고.
해부학 교과서를 다시 펼치면서도
자기계발 책을 완전히 밀어내지 않고,
자기계발 책을 읽으면서도
학교 공부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것.
지금의 나한테 의미 있는 삶은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