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문장을 적어 보는 밤
어릴 때 했던 게임들 속에는
늘 누군가가 먼저 만들어 둔 길이 있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버튼만 누르다가,
몇 번이고 같은 자리에 쓰러지는 날이면
결국 검색창을 열었다.
누군가는 이미 그 보스를 여러 번 상대해 보고,
언제 돌진을 하고,
언제 광역기를 쓰는지
차분하게 정리해 두었다.
그 공략대로 스킬을 배치하고,
추천하는 순서대로 유닛을 움직이면
정말로 게임은 조금 쉽게 풀렸다.
죽음의 횟수는 줄어들고,
막혀 있던 구간이 부드럽게 열렸다.
화면을 끄고 방에 불을 켜는 순간,
그때의 편리함이 오래 남았다.
“그냥 누가 알려 준 대로 하면 되잖아.”
그 감각을
나는 꽤 오랫동안 현실에도 그대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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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는 공략집 대신
다른 형태의 문장들이 떠다닌다.
책의 제목으로,
짧은 영상의 캡션으로,
누군가의 인터뷰 문장으로.
어디서나 비슷한 부사들이 붙어 있다.
“매일”, “항상”, “반드시”.
나는 그런 문장들을
한때는 옷처럼 입어 보려고 했다.
아침마다,
그 문장에 맞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정을 한 줄씩 채워 넣었다.
그렇게 빽빽해진 하루는
잠깐 보기에는 멋있어 보였다.
문제는 실제로 살아보면
숨이 찼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길어진 통학길,
갑자기 생긴 약속,
멍하니 누워 있고 싶은 밤.
그런 것들은
어디에도 계산되어 있지 않았다.
계획표 위에서 삐져나오는 것들은
모두 내가 부족해서 생긴 예외처럼 보였다.
문장을 의심하는 대신,
늘 나를 먼저 의심했다.
남의 하루를 기준으로 만든 루틴 속에서
내 하루를 억지로 끼워 맞추다가
어느 순간
버튼을 다 놓아 버린 날들.
돌이켜 보면
그때 실패한 건
의지라기보다
“이 말은 누구에게 맞춰진 것일까?”
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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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섯 주 동안
나는 처음으로
종이에 나의 생활 지형을 그려 보았다.
특별한 도구를 쓴 것도 아니고,
대단한 통계를 낸 것도 아니다.
그냥 한 장의 달력을 펴 놓고
루틴이 흩어진 날에
작게 표시를 해 나가는 식이었다.
표시는
생각보다 한쪽에 몰려 있었다.
어느 요일의 밤,
특정한 시간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의 몇 시간.
언제나 비슷한 지점에서
집중력이 꺼지고,
몸이 무거워지고,
“오늘만 그냥 넘어갈까”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 자리들을 이어 보니
하루와 하루가 닿는 모서리들이
유난히 닳아 있는 지도가 되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이 지형을 모른 채 쓰인 것들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정확하게 맞았을 그 조언들이
내 지도 위에서는
가파른 언덕 끝,
길이 끊긴 낭떠러지 옆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걸 억지로 따라가려다 보면
몇 번은 버틸 수 있지만,
결국 발목이 먼저 시큰거렸다.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바꿔야 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 전체가 아니라,
이 지형 위에
그 문장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쪽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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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책상 위에 책 한 권을 펼쳐 둔다.
예전 같으면
밑줄을 그으며 그대로 외웠을 문장들 사이로
이번에는 연필을 들고
여백을 먼저 본다.
“매일”이라는 단어 옆에
나는 작게 적는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날의 리듬으로.”
“항상”이라는 말 옆에는
이렇게 덧붙인다.
“자주 무너지는 구간에는
애초에 완벽을 기대하지 말 것.”
글을 쓰는 사람의 목소리와,
지금 이 책상을 앞에 두고 있는
내 목소리가
조금 뒤섞인 문장이
서서히 만들어진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느슨해 보일지도 모르는 규칙들.
하지만 내 생활의 지형을 따라
조금씩 깎이고,
잘려 나가고,
붙여진 뒤에 남은 것들.
게임이었다면
누군가의 공략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조금 느리더라도
내가 직접 써 본 문장을
조금씩 늘려 가는 쪽을
선택해 보고 싶다.
정답을 찾는 대신,
나에게 맞는 설명을 하나씩 찾아 적는 일.
언젠가 이 브런치북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가는 날이 온다면,
여기에는
어디선가 그대로 베껴 온 문장들보다
그 문장들이
나라는 사람을 통과하며
어떻게 모양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더 많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오늘 토요일의 한 페이지도
그 기록 중의 한 줄 정도로
조용히 남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