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그늘, 두번째 이야기
한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지 3달이 다 되어간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틈틈이 돈을 벌었고 졸업 후에는 오롯이 경제적으로 독립했지만, 솔직히 투입하는 시간과 에너지 대비 소득이 높은 일을 해왔다. 내 알바의 8할은 과외였고 나머지도 학원 선생님, 공공기관에서의 문서보조 알바 등이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스무디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용돈이 필요해서 했지만 카페 아르바이트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해보니 예상보다 더 고되어서 돈 버는 일에 로망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의 알바는 모두 책상 앞으로 몰아넣었다.
8월말에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서빙이 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일했던 이력도 있고, 문서작업 잘 할 수 있고,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할 줄 알고 제법 괜찮은 점수의 공인영어성적도 있으니까, 책상 앞에서 하는 일, 시간 대비 수입이 짭짤한 일을 구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나의 프랑스어 실력이 아직 미천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괜찮은 알바비를 얻을 수 있는 건 통역이나 현지 코디/리셉셔니스트인데, 아무리 다른 장점을 강조한다 해도 - 커뮤니케이션 센스가 좋다, 응대하고 안내하는 일 직장에서 많이 해봤다, 밝다 등 -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일자리는 많지도 않았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맘에 드는 일자리가 나오길 기다릴 수는 없었다. 9월에 바로 월급을 받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집에서 가깝고 가본 적도 있는, 괜찮은 한식당의 구인공고를 발견했다. 프랑스에서 학생비자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체력이 달릴 정도로 힘들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집 근처니까 시간을 버릴 일도 없었다. 한식당에서 알바하면 한식을 그때마다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각자 20대에 해본 적 없는 아르바이트를 30대가 되어 시작했다.
일은 명쾌하다. 해야 하는 일이 분명하고,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고, 그렇게 해야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내 몫보다 더 많은 몫을 해낼 필요가 없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니 실수하지 않도록 정신차리고 있어야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손발을 맞추어야 하기에 마냥 쉽지는 않지만, 몸을 움직여가면서 에너지를 주기적으로 소모함으로써 느끼는 활력이 좋고, 내게 배어있는 사회적 친절함이 일에 잘 맞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래도 일 안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할 만하다.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해외 나와서는 식당 서빙을 하는 것이 ‘어쩌다가? 왜?’ 하고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은 아니다. 이곳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도 아니다. 내 삶을 책임지고 있는 내 모습에 만족한다. 좀더 짧은 시간 일하고 좀더 넉넉한 돈을 벌면 물론 더욱 좋겠지만.
알바와 함께, 소소하게 나가는 지출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애플뮤직 구독을 과감히 중단했고(이건 좀 슬프다), 2.7유로짜리 감자칩을 사먹다 1유로짜리로 바꿨고, 저녁마다 곁들이던 술을 줄이기로 했고(그러나 별로 줄인 것 같지 않다) 모노프리보다 저렴한 리들에서 쇼핑을 한다. 한편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손에 잘 쥐고 있다. 34유로짜리 영화관 월정액 패스는 계속 결제중이고, 밥은 든든히, 채소와 단백질을 날마다 섭취하려고 노력하며, 주 2-3회 술을 즐기고, 다음 여행지를 고민한다.
이렇게, 우린 지내고 있다. 새로 만나는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 이곳에 왔고 1년 후를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소중히 즐기고 있다. 이게 다 자위인가 마지막으로 돌이켜보지만 아무래도 진짜로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