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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30. 2019

너는 잘하고 나는 못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부부잖아

프랑스로 유학 와서 외국어 시험을 치르는 건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현지에서 프랑스어를 익히며 프랑스어 시험을 쳐서 석사 지원요건을 맞추는 것과 더불어, 영어 시험도 쳐서 석사 지원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1지망 학교는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가 되었다.) 그래서 작년 3월 프랑스에 올 때 애초에 토플 문제집을 가지고 왔고 난 5월초에 시험을 치고서 이후 프랑스어 공부에 집중했다.


2018년 세 차례 외국어 시험을 치르면서, 또한 지난 날의 나를 돌이켜보면서 난 언어시험에 강한 편이라는 걸 깨달았다. 취업준비생 시절 토익은 985점을 받았고 한국어능력시험은 1급을 땄다. 지난해 치른 토플은 110점이었다. 초고득점은 아니지만 진짜 내 영어실력에 비해 충분히 잘 받은 점수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어의 경우 이곳에 와서 10월에 DELF B2, 12월에 DALF C1을 땄다. 실제 내 프랑스어는 절대로 그만한 실력이 못된다. 어찌됐건 석사 지원에 필요한 자격 요건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이 홀가분하다. 어찌어찌 시험은 잘 치른 덕분에 올해 외국어 시험에 대한 압박을 더 받을 일이 없게 됐다.


프랑스로 유학 와서 어학 공부로 시간을 보낸 지난 10개월이 남편에게는 더 큰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외국어시험에 영리하게 대처하는 아내를 둔 반면, 본인은 외국어 촉이 그리 날카로운 편은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공부를 뭉근하게, 깊이있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시험 통과가 다 한 발 늦다. 우린 어디든 항상 함께 다녔고 사람들과 함께 대화했다. 사람들은 나를 추켜세워주었다.


짧고 굵게, 할 때는 집중도 있게 확실히 하는 나의 공부 방식과, 그의 공부 방식은 다르다. 짧고 굵게 빡! 하고는 치워버리니까 이후에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접하지 않는 이상 잘 휘발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세계사알못이다. 세계사는 중학교 때 교과과정으로 배운 것 이외에 공부한 적이 없고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반면에 남편은 뭔 남의 나라 역사를 술술 꿴다(물론 우리 나라 역사는 더 잘 안다). 나라별 국기는 왜 다 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길을 다니다 어느 국기든 보면 나라 이름을 맞힌다. 그가 틀렸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게 그냥 모른다. 늘 농담처럼, 초등학교 때 사회과부도 책을 한 손에 들고서 맨날 지도 보고 국기를 외우는 뱅뱅이안경을 쓴 애가 너였구나, 한다.(남편은 실제로 뱅뱅이안경을 썼다.) 여행을 같이 다니면 남편의 이야기 덕분에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사크르쾨르 성당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하다.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가까워지게 됐고 좋아하는 소설도 비슷하다. 좋아하는 영화는 조금 다를 때도 있지만 싫어하는 영화는 비슷하다. 세상일을 바라보며 비슷한 의심을 품고 질문을 던진다. 


커피와 책. :)


반면 우리는 서로 잘하는 것, 자신있는 분야가 다르다. 예컨대 생활 속에서 그는 길을 잘 찾지 못하는 대신 나는 위치 파악을 잘 한다. 남편은 몇 번을 갔던 길을 매번 헤매는 터라 함께 다닐 때 길잡이는 보통 나다. 한편 나는 생선을 못 다루지만 그는 요리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 기꺼이 만지고 다듬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한번은

오븐통닭구이를 해먹는데 그가 생닭 씻는 것을 보고 반려동물 목욕시키는 줄 알았다. 그렇게 애정과 정성을 쏟아서일까, 남편이 해주는 음식들은 화려하지 않아도 다 맛있다. 


그외에도 사소하게 다른 점들을, 함께 살면서 생각보다 많이 깨달아가는 중이다.

우리가 똑같은 것을 잘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같이 좋아하는 것은 서로 북돋워주고, 너는 잘하고 나는 못하는 것을 네가 알려주고, 나는 잘하지만 네게 부족한 부분은 내가 이끌어주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으니까.




 

* 이 글은 남편의 이전 글 <신혼, 우리 사이의 '미세조정' 시간>에 대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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