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백수가 되다
우리의 연애를 설명하는 표현들은 참 로맨틱했고,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캠퍼스 커플
서로의 첫사랑
8년의 연애
그중 장거리 연애 5년
2017년, 우리는 부산과 서울에서 만 4년째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부산으로 이전한 우리 회사에서 유일하게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장거리 연애 당사자가 바로 나다. 남편은 서울에서, 나는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끝날 기약이 없는 장거리 연애였다. 그런데 그 종착점은 부산도 서울도 아닌 난데없는 파리가 되었다.
기나긴 장거리 연애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연애 초반 2년을 학교에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며 관계가 단단히 형성된 덕이 크다. 롱디가 처음도 아니었다. 내가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직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남편, 남자친구는 그제서야 교환학생을 떠났다. 그때야말로 제대로 1년간 롱디를 했었는데, 사회초년생인 내가 자아실현과 현실 사이에 아등바등하며 남자친구에게 소원해지는 찰나, 그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를 향한 내 뜨거운 마음도 함께 돌아왔다.
항상 활활 타올랐던 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어떨 땐 봐도 무덤덤 안 봐도 무덤덤했고, 한번씩은 못나 보였고, 이 세상 어딘가에 나랑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을 향하며, 비슷한 가치판단을 내린다는 것.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가치관이 같다는 점에서 우리 관계는 쉬이 끝날 리가 없었다.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 할 것 같기는 했지만 언제 어떤 계기로 결혼하게 될지는 몰랐다. 서로 품은 해외 유학의 꿈이 구체적인 계획이 되면서 결혼도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했다.
파리에서의 신혼.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게다가 우리는 이곳에서 무직자다. 학교가는 시간 빼곤 오롯이 함께 있을 수 있다. 한 이틀 데이트하고 나면 부산에 돌아가야 해서, 그마저도 한두 시간 늦게 가고 싶은 날이면 기차 시간을 늦추고 또 늦추고 했었는데 이젠 잠자기 전에도, 눈을 떠서도 늘 함께다. 심지어 우리집은 스튜디오다. 늘 지척에 있는 너. 애구 하루하루가 좋아라.
그런데, 조금씩 답답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