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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Nov 22. 2018

8년을 사귀었어도 너를 다 알지 못했네

'너'와 '나'의 재발견. 앉아서 오줌누는 게 어때?

"결혼하면 달라."

"결혼하면 많이 싸워." 

"사귀는 거랑 같이 사는 게 다르다니깐."


결혼을 앞둔 우리에게, 혹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우리에게 많은 이들이 줄곧 해준 말이다. 그러면 난 곧잘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이미 너무 오래 사귄 걸." "우리 사귀는 동안 싸운 적이 없어." "우린 일상을 너무 많이 공유해서 모르는 게 없어."


그러나 함께 지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에 일리가 있었다. 

2017년 4월, 휴가로 갔던 마르세유에서.


그래, 다 알긴 알고 있었다. 그는 잘 때 코를 곤다. 그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서서 소변을 본다. 그가 혼자 살 때 빨래를 널고 개는 것을 많이 봤다. 내게 특별히 문제될 거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의 작은 습관과 생활방식이 나의 일상이 되자 묘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선 코고는 소리에 매일밤 새벽에 잠을 깼다.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좌변기 커버가 들어올려진 경우가 많았고 소변의 흔적이 눈에 들어오는 때가 많았다. 그가 옷가지, 양말 등을 개어두면 각이 살지 않아 덜 깔끔해보였다.


코골이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피곤해서 하루 이틀 고는 거면 모르겠지만 거의 날마다 코를 고니까 원인이 있을 것 같았다. 검색하는데 자동완성 검색어에 무호흡증, 수술 등이 같이 떴다. 그래, 가끔 호흡을 꽤 길게 멈추다가 갑자기 막 몰아쉬어서 내가 놀란 적도 있지. 병원 블로그의 글과 기사 등을 보니, 코골이의 원인은 음주/비만/코 질환 등으로 압축되었다. 오호 비만! 

"이것 봐, 비만이어도 코를 곤대. 실생활에서의 개선 방법으로 체중조절을 추천한대! 금연도 좋대."

아침마다 찌뿌듯해 하는 내게 그는 미안해하며 '한국가면 수술할까?'하고 말했고, 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개선방법 중 평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만 쏙쏙 뽑아 해주었다. 혹시 베개 높이가 높아서 그런 건 아닐까 싶어 그의 베개솜을 절반 이상 빼냈다. 그가 코를 골면 툭툭 건드려서 옆으로 돌아누워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빨래를 널고 개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잘하는 것은 정말 큰 미덕이었다. 나는 많은 집안일 중에서 희한하게 세탁기 돌리는 것이 그렇게 귀찮다. 나서서 일을 하는 남편에게 고마웠지만, 아무래도 마른 옷가지들을 개서 예쁘게 정리하는 것은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아, 나의 방법을 전수해주기로 했다. 내 방법은 곧 우리 엄마의 방법이다. 

"있지, 옷 소매는 이렇게 두 번 접으면 여기 각이 살아 있어서 접으면 딱 깔끔해진다? 팬티는 이렇게 세 번 접고, 양말은 이렇게 접어줘. 수납장에 넣을 때 이렇게 등만 보이게 넣어줄래?"


변기.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어릴 적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아빠의 소변 흔적을 딱히 본 적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딸만 키우는 집에서, 누구보다 깔끔을 떠는 우리 아빠는 언젠가부터 앉아서 소변을 보셨다. 그래서 겪어본 적 없는, 소변 방울이 튄 변기를 목격했을 때 남편에게 부탁했다. 소변 본 뒤에 꼭 확인하고 닦아달라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내 눈에 계속 들어왔다. 그는 닦는다는데, 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방울이 다시 살아나 있을까. 화장실에 들어가면 변기를 세심히 쳐다보게 되었고, 내가 닦을 거면서 남편에게 한번 더 상기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방울 또 튀어 있던데?"


이번엔 앉아서 소변 보는 것을 검색해보았다. '앉아서 소변'이라고 검색어가 자동 완성된다. 오, 앉소남 서소남.. 이런 단어도 있군. 요즘에는 앉아서 소변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앉아서 볼일 보는 남성이 60% 이상이라고 하고 독일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검색결과를 빠르게 훑어보는데 전립성비대증에 좋다는 말도 보인다.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는군. 뭔가 대세 같다. 

"우리 아빠는 앉아서 오줌눈다? 너도 앉아서 오줌 누는 게 어때? 아빠도 처음엔 어색했는데 금세 익숙해진대."

정말 설득하려던 건 아니었고 농담처럼, 그러나 가능성은 열어두고 건넨 말이었다. 


나는 다 알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의 생활방식과 나의 생활방식이 하나의 일상이 될 때 어떠한 모습이 될지 그려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방식과 다른 점들을 맞닥뜨릴 때, 그런 점들을 쿨하게 넘겨버리지 못하는 나를 재발견하게 됐다. 


상대방을 바꾸려하지 말고 차이를 이해하라는데, 나와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데, 나는 이런 것을 잘 하는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나. 나를 반성하다, 문득 합리화도 해본다. 이건 그 사람의 성격, 본질에 대한 게 아니니까, 같이 더 편하게 더 깔끔하게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거니까 괜찮잖아? 그러다가 다시 또 나를 나무란다. 그래봤자 내가 원하는 방식을 그에게 요구하고 있는 거잖아. 내 기준을 바꾸지 않고.

나를 비추어주는 너. :)  여기는 보르도, 물의 거울. 


결혼생활 덕에 몰랐던 나를 알게 됐다. 나는 사실 잠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아침에 알람소리가 울리자 마자 번쩍 잠을 깨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근 12년을 혼자 살면서 고요함 속에서 잠을 잤으니, 내 수면이 예민한 편인 걸 몰랐던 것. 그리고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청소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닌데. 가족과 함께 살 땐 엄마 덕에 깔끔한 환경을 누렸고 혼자 살 때는 청소를 자주 하지 않는 대신 심하게 어지럽히질 않았다. 수납을 깨끗이 잘 했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질서 있게 쌓아두었다. 

나는 이렇게 엄격한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너는 참 착하게도 내 요구에 대부분 응해주는구나. 


"나를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면서, 나는 당신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한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에. 그리고 당신 속에서 나를 버린 뒤에 나는 나를 되찾는다. 당신이 나를 살아있게 하므로."

-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인용한 <에로스의 종말>(한병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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