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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Nov 22. 2018

한국과 멀어지기로 했다.

파리에서 되찾은 우리의 '지금'

언젠가는 그 날이 다가올 거라 서로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식일 줄은 몰랐던 거 같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이런 식이 아니면 아직도 그대로였을지도 모르겠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초처럼


"정말로?"


앞서 이야기됐지만 8년 간의 연애, 첫 연애, 그리고 결혼.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다. 대부분 놀라고 일종의 로망 혹은 환상과도 같은 '첫사랑'의 완성담에 부러움을 표한다. 때로는 되레 안타까움(?)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8년이나 만났어?"


그다음 반응도 대부분 같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라는 식으로 답한다. 근데 정말 그렇다. 우리의 연애가 여기까지,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만나는 동안 우리를 이어주는 가장 큰 감정은 "이 사람 아니면 안 돼" 같은 절박함, 간절함, 목마름보다는 "지금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의 편안함이었다. 당연히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감정은 있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지. 그래도 이대로가 좋아"가 연결되면서 수년의 시간이 쌓였다. 한 순간에 '팡'하고 사라지는 아름다움 불꽃보다는 은은하게 계속 빛을 내는 촛불 같았다고 할까?


맥주도 한 잔 하고


위기도 있었다. '롱디'가 길어지면서 각자의 '지금'에는 서로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눈앞에 일들이 해결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함께라서 좋아"의 순간은 희미해져 갔다. 그 빈 공백에 공허함이 스며들고 이는 곧 서운함, 오해, 아쉬움으로 변질됐다. 그렇다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때 아내의 직장이 부산으로 옮겨갔고 난 남아야만 했다. 그래도 불쑥 공허함은 찾아오곤 했다. "왜 지금 너는 없는 거니?"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다행히도 그 순간은 넘어갔다. 비록 '롱디'는 2년간 더 이어졌지만 서로를 오해하게 만든 공허함의 자취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질문을 주고 말았다. 누군가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롱디'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문제는 또다시 공허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거였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위스키도 한 잔 하고


"그냥 떠나자"


우리가 잃어버린 '지금'을 되찾기 위해 누군가가 결심해야 한다면 같이 결단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못다 한 공부에 대한 열망, 해외생활에 대한 갈망, 무엇보다 다시 함께하고픈 소망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보다 앞서 파리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파리에 오면서 우린 다시 함께 있다. 서로의 학원이 다르고 아르바이트 스케줄이 있지만, 매일 밤 같이 앉아 와인잔을 기울인다. 시간이 나면 나들이도 가고 영화도 보고 과감하게 외식을 하기도 하고. 상실했던 '지금'을 회복했다. 


그런데 '지금'이라는 순간을 공유하는 것과 매일을 같이 하는 것은 생각보다 결이 달랐다. 8년을 만나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고 이해받기를 원하고 있다. 


근데 가끔은 우린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모습을 보는 지도. 그래도 같은 걸 보고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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