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활의 조력자 남편
우리는 9개월 차 유학생 부부다.
부부가 같이 공부하면 서로 의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둘 다 기대고 의지할 상대가 필요하기에 힘들다는 얘길 종종 들었다. 자칫하면 둘 중 한 명이 자신의 학업을 희생하고 뒷바라지만 하게 될 수도 있다고, 그게 여자가 되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고 들었다. 난 "왓? 절대 그럴 리 없어! 나는 내 인생이 소중하거든!" 하고 쉽게 넘겨버리고 말았지만, 어쨌거나 요즘 그 '뒷바라지'의 고달픔과 고마움을 조금은 느끼고 있다.
아직 석사 과정을 시작하지 않아 우리의 유학 생활은 비교적 널널한 것일 테다. 하지만 학교에 지원할 때 필요한 공인 영어성적과 프랑스어 점수 때문에 시험을 치러야 해 은근히 계속 압박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 먼저 통과한 단계는 영어였다. 어차피 프랑스어는 실력이 좀 쌓여야 시험을 칠 만한 수준이 되니 초기에 느긋하게 어학 하는 동안 영어 점수를 얼른 만들어놓자 싶었다. 한국에서 애초에 토플 책을 사온 난 파리에서 5월에 토플 시험을 봤고 필요한 점수를 얻었다.
시험을 치기까지 남편이 밥이고 청소고 많은 부분을 해줬다. 내가 오후 어학원에 다녀오면 저녁 8시였는데, 귀가가 빠른 남편이 항상 8시에 맞춰 저녁을 해두었다. 그러면 보통 내가 설거지를 하지만, 시험일이 다가오는 막바지엔 나 공부한다는 핑계로 설거지를 은근슬쩍 남편에게 맡겼다. 남이 해준 밥 먹고 쓱 뒤돌아서서 놀면 너무나 편하다.
이 고마움을 남편에게 되돌려주려고, 6월 남편이 아이엘츠 시험을 치기 전까지 저녁은 내가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8시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면 식사 시간이 늦어지긴 하지만, 파리의 여름밤은 어차피 길어서 8시 반이나 9시에 먹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요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맛이 잘 나면 기분 좋기도 하고, 남편은 뭐든 항상 맛있게 잘 먹어주니 부담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채소 팍팍 넣은 식단을 줄 수가 있어 좋았다. 학원 다녀오자마자 부엌에 들어가서 가사를 하는 것이 조금씩 귀찮을 때도 있었어도 '시험만 끝나면' 이것도 끝이니 괜찮았다.
그러나 그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8월에도, 9월에도 아이엘츠를 계속 쳤다.
시험공부 기간이 길어지면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을 알기에 그가 시험을 빨리 끝내야 했다. 학교에서 보내야만 하는 프랑스어 공부 시간 외에 영어 공부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했다. 남편은 평일에 도서관 갔다가 8시 20분까지 집에 오기로 하고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일상을 이어나갔다.
반복되는 가사가 어느 날 확 지겹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전업주부인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어떻게 맨날 밥을 해먹이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가끔 아빠가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언니나 내가 집에 가는 날이면 설거지나 빨래를 돕지만, 그건 그야말로 돕는 거지 본 업무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나도 자취하는 동안 집안일을 해왔지만 혼자 살며 집안일을 하는 것과 가족의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다르다. 혼자면 마음 동하는 대로 밥 먹기 싫으면 안 먹고, 바쁘면 설거지 못하고 이틀을 보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라면 내가 밥 안 먹어도 다른 이는 밥을 먹어야 하고, 내가 집안일을 안 해놓고 있으면 그게 공동의 숙젯거리가 된다. 밥 하기 귀찮으면 사 먹으면 되는데, 파리에선 외식을 어느 때고 쉽게 할 수 없다. 나는 남편에게 한 시간 더 공부하는 시간을 주고 싶으니까 밥이든 청소든 내가 할 만한 집안일은 해야 했다. 그래봤자 나는 가사를 전담하지 않았다. 내가 밥해주면 설거지하는 건 남편이었고, 내가 청소를 하면 빨래는 남편이 했다. 주말에는 남편이 요리를 했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에 내가 50보다 더 많은 비율로 집안일을 하는 것 같을 뿐이었다.
9월에 치른 아이엘츠로, 남편도 드디어 영어 시험에서 해방되었다. 그다음, 내가 10월에 프랑스어 시험, DELF를 치게 되었다. 남편이 이번에는 요리고 청소고 빨래고 다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는 정말 그렇게 했다. 둘 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저녁을 같이 먹을 날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이불 정리도, 세탁기 돌리는 일도, 청소하는 일도 본인이 알아서 착착 해두었다. 둘이 같이 밥 먹는 날 어떤 메뉴를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남편의 큰 낙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는 요리를 좋아한다. 특정 음식들을 참 좋아한다. 한국에서보다 더 잦은 빈도로 카레와 미역국을 먹은 것 같다. 닭갈비와 닭볶음탕의 중간 그 어디쯤에 있는 듯한 닭갈비를 몇 차례 하더니 그것이 그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다. 그가 요리했으니 내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그게 귀찮은 날이면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설거지하자고 하고는 그가 질 때까지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러고 어느샌가부터는 그냥 그가 설거지를 했다. 남편은 내가 뒷바라지해준 것보다 훨씬 헌신적으로 집안일을 책임져주었다.
다행히 DELF B2에 합격했다. 내 시험이 끝났더라도 남편은 여전히 본인이 요리를 하고 싶어 하고, 설거지의 8할은 그가 하고 있다. 쓰레기 버리는 당번은 항상 남편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12월 프랑스어 DALF C1 시험을 신청해두었다. 자연스레 또 내가 누리는 기간이다. 지난 금요일, 학원 끝나고 알바도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뭔가 달라진 거 없어?" 하며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청소했구나?"하고 건조하게 대답하자, "하. 별로 티 안 나나봐." 하며 서운한 표정을 보였다. "아니야! 바닥에 완전 먼지 하나 없네, 딱 보니깐 알겠네!!" 하고 얼른 그에게 보람을 안겨주었다. 집안일에서도 칭찬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이런 칭찬과 보람으로만 그가 가사를 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도 우리는 당연히 모든 집안일을 함께 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남편이 조금 더 많이 했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지휘해두고는 그가 놓친 부분들을 닦고 치웠겠지.
집안일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다. 실은 정신적 뒷바라지가 더 힘들 테니까. 어느 날은 유독 더 뾰족해져서 괜히 상대방에게 예민한 마음을 못나게 내보이는 때가 있는데 어제 똑 그랬다. 남편도 덩달아 뾰족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한 발 물러서 있어 주어서 얼마 안 가 마음을 도닥일 수 있었다. 그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바라고 더 나은 모습을 원하다가도 지금 그 자체로 내가 충분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어서, 문득 참 행복하다.
여긴 지금 일요일 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난 글(*)에서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날 기다린다는 남편 말처럼, 나도 침대에 엎드려 키보드를 토닥토닥 두들기면서 남편이 집에 오길 기다린다. 얼른 와서 놀자 여보.
* 우리 부부의 이전 글, <혼자 있어도 괜찮아, 그래도 너무 오래 있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