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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Nov 29. 2018

혼자 있어도 괜찮아, 그래도 너무 오래 있진 마.

나는 오늘도 장을 보러 간다.

우리에게는 리듬이 있었다. 수년간 롱디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일이 잦았다. 아내의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 패턴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물론 모든 연인들이 매일 붙어 있고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닐 거다. 다만 우리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아서 채워야 했다. 달리 말하면 상대적으로 긴 개인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각자 서로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내는 서핑을 하며 개인 취미를 즐기기도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집에 뒹굴며 예능 프로그램을 몰아 보기도 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주어졌고, 우리는 그것에 잘 적응했고 어떤 면에선 안일하기도 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당장 서로가 필요할 때 곁에 없을 때 그 짜증은 오롯이 상대를 향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 신경 써 줄 수 없어?" "너무 방치하는 거 아냐?" 같은 생각이 어쩌다 가끔씩 스며들기도 했다. 그게 한 번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비 온 뒤 땅 굳는다고 다시금 한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됐지만 '익숙함'은 '안일함'의 다른 말인 것처럼 우린 그런 순간을 겪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파리에 와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다시 같이 있자"


이런 곳에서 잠시 혼자이고 싶은


하지만 늘 그렇듯 변화는 적응기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혼자 있어 편했던 우리는, 갑자기 다시 같이 있게 되자 또 다른 불편함이 찾아왔다. 나는 그녀의 깔끔함이 신경 쓰이고, 나의 코골이에 그녀가 반응하는 것처럼.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두 번이면 괜찮았지만 그게 일상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이 변화에 우리는 적응을 해야 하는 데 문제는 누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였다. 코를 골지 말 것인가, 코골이를 자장가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는 우리 관계에 있어 새로운 난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춰가면 됐다. 내가 교환학생을 가면서 떨어져야 했고, 아내가 먼저 취직하면서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적응해야 했고, 또 아내의 직장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달라지는 환경에 맞춰 진화하는 것은 시간을 들더라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삶과 우리의 삶의 균형을 찾았다.


근제 지금의 문제는 환경적인 것이면서도 오롯이 상대방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즉 우리는 같이 있다는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혹은 간과했던 서로의 차이를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직면하고 말았다. 가장 큰 외부 변화가 상대방이 된 것이다. 어쩌다 한 두 번이면 신경 쓰이지 않을 것들이 매일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이를 테면, 내가 양치질을 세게 해서 칫솔이 너무 빨리 마모된다거나, 가끔은 잠이 안 와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고 싶어도, 스튜디오에 살면서 쉽게 잠에서 깨는 아내가 옆에 있는 한 이는 어렵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가만히 누워 있던 적도 있다. 혹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아내를 인식하게 되거나. 그 시선에는 그 어떤 말보다 무거운 무게감이 담겨 있다.


아내가 공간을 나누자고 했을 때 나도 적극 찬성했다. 그녀 못지않게 나도 개인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대단한 것을 하진 않지만 아무도 없는, 아니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는 시간에 놓이는 건 그 자체로 너무 큰 자유를 준다. 말 그대로 나만 있으니까. 그냥 뒹굴거리기도 하고,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도 혼자 있을 때 하는 게 가장 편하다.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을 스스로 느낄 때 잠시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며 상념에 빠진다. "이번 글은 어떤 주제로 쓸까?"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지난 반년 동안 뭘 했지?" 등 오로지 나 스스로에 의한, 나 자신을 위한 시간. 그 전에는 매일 누렸던 이것이 지금은 너무나도 희박해 갑갑함을 느끼기도 한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서로 잃어버린 각자의 사간을 위해 학원을 마치고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간다. 대개 학원 수업이 오후 2시쯤 끝나고 집까지 가는 데 20분이 조금 더 걸린다. 그때쯤이면 아내의 오전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랑 엇비슷해진다. 이때 어차피 장도 봐야 하기도 하고 잠시 혼자의 시간을 갖도록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마트를 간다. 그러면 아내는 집에서 초콜릿을 까먹고 나는 마트에서 파는 애플파이를 한 입 베어 물며 집에 온다. 잠깐이나마 서로만의 달달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래도 둘이 마시는 와인이 더 맛있는 것처럼


그렇게라도 어떻게든 서로의 시간을 만드려고 한다. 잠시 상대에 대한 쉬는 시간을 갖고 내 주위를 나만으로 채우는 시간. 잠시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공간을 만들면서 상대를 다시 받아들이는 여유를 회복하는 것. 그래서 그런지 아내가 오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에 없는 지금이 너무 좋으면서도 일 끝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며  "안녕?!" 하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집 지키던 강아지가 주인이 문을 열 때 꼬리를 흔들며 문 앞에 얼쩡거리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래 역시 독립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게 더 재밌다. 그 재미를 위해 우린 여기 있기도 하고. 그러니 혼자 있어도 괜찮아. 다만 너무 오랫동안 있지는 마.


* 이 글은 <혼자 있고 싶어.>에 대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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