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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니 Dec 24. 2022

아버지가 살던 집에 다녀왔다

당신의 발자취를 찾아서

아버지가 살던 집에 다녀왔다. 투병하시는 동안 군산에 혼자 계시는 기간이 있었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군산에 가보지 못했었다. 병이 깊어가는 동안 홀로 지방에 계셨을 시간이 상상하기 무섭고 죄스러웠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난 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죄책감에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은 접어두고, 아버지를 현재형으로 그리워하기로 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군산에 다녀왔다.

눈이 정말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몇십 년 만에 폭설이라지.

엄마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군산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힘든 기억이 많으셨겠지. 오늘의 방문이 엄마에게 군산을 기억하는 좋은 기억의 조각이 되기를 바랐다.


군산은 눈이 펑펑 내려도 제설 작업을 거의 하지 않더라. 덕분에 흡사 홋카이도 같은 모습의 군산을 보고 왔다. 눈 쌓인 희고 깨끗한 모습 덕분에 여행에 신비로움이 더해졌다.





아버지가 살던 빌라에 갔다. 작은 3층짜리 빌라. 사장님이 눈을 쓸고 계셨다. 엄마와 사장님은 인사를 나눴다. 4년 전쯤임에도 사장님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계셨다. 막바지에 살이 많이 빠지셔서 걱정되었었다며, 건강하시냐고 물었다. 엄마는 건강하시다고 답했다. 잠시 뒤 사장님의 남편 분과 아들이 나왔다. 삽을 뺏어 들고 이어서 눈을 쓸었다. 예쁜 모습이었다. 따뜻한 분들이 계신 곳에 아버지가 묵으셨음에 감사했다.





엄마는 아빠가 어떤 세탁소를 다녔고, 어디 마트에서 무엇을 샀는지, 어디에서 회사에 가는 셔틀버스를 타셨는지, 피부과는 어디로 다니셨는지 일러주셨다. 살면서 아빠 생각날 때 한 번씩 군산을 찾게 될 건데 너 아는 거 아무것도 없잖아, 하시며. 무뚝뚝한 엄마가 위로를 건네는 방식이다.  


아빠가 빌라에서 나와 주말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빵집을 들르고, 수선집을 가서 맡겨둔 옷을 찾아오는 모습을 눈에 담아보았다. 눈을 감고 아빠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고, 고생 많으셨다고.




아끼는 동료 L이,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서 과거의 자신에게 기도를 건네면 과거 속에 자신이 힘을 낸다고 말씀하셨었다. 그 말을 믿고 싶은 오늘이었다. 아빠가 계시던 이곳에 와서, 아빠를 따라 걸으며, 현재의 내가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고,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긴 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과거의 아버지에게 들리기를 소망하며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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