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여러 종교를 넉넉히 체험(?)해보시던 엄마가 천주교로 마음을 굳히고 열심히 성당을 나가시더니 세례를 받게 되었단다. 본디 건조하고 이성적이어서 차갑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엄마이기에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시는 것이 퍽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마음먹으면 꾸준히 하는 엄마의 성향은 종교 취득(!)에도 발현되었고, 엄마는 '에스텔'이라는 예쁜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름이 새로 생긴다니, 재밌는 일이다. 40대에 새로운 이름이 생긴다는 게 중학생이었던 내 눈에 신기해 보였다. 한평생 쓰던 장롱을 옆에 두고 새 가구를 들이기로 결정했을 때 설레던 기분이 되었다. 에스텔이라니.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엄마답게 이름도 참 예쁜 이름을 골랐다 싶었다.
정말 신기한 건 여기부터였다.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들끼리는 천주교식으로 결혼을 해야 하는데, 마침 아빠가 젊은 시절에 받은 천주교식 세례명 '바오로'가 있었고, 엄마는 이제 막 따끈하게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므로, 둘의 혼인식을 천주교식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이라니? '리마인드 웨딩' 따위의 유행도 없었던 때였으므로 말만으로도 독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당 강당에서 세례식이 진행되었다. 한 명 한 명 나와 세례를 받고, 엄마도 다소곳이 걸어 나가 신부님께 세례를 받고 에스텔로 태어났다. 모두의 세례가 끝날 무렵, 신부님이 약간의 머쓱한 웃음을 띠며 '오늘 결혼식을 올리게 된 부부가 있다, '고 발표했다. 에스텔과 바오로를 호명했을 때, 그 누구도 이 이름의 주인공들이 40대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나로서는 이 결혼식이라는 것이 너끈히 이백 명은 되어 보이는 관객 앞에서 본격적으로 거행되는 식인지 몰랐기에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술렁였다.(엄마 아빠는 알고 있었을까?)
머쓱해 보이는 엄마와 아빠가 신부님 앞에 섰다.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무대에 서있는 아이돌의 친누나로 객석에 앉아있는 것과 유사한 우쭐함도 들었던 것 같다.
절차는 짧았지만 꽤나 공식적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경력자답게(?) 매끄럽게 식을 마무리했다. 혼인서약서를 낭독하고, 신부님 앞에서 백년해로를 다짐했다. 신부님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공표했다. 나는 멀리서 지켜봤다. 그날 엄마가 참 예뻤고, 아빠는 여느 때처럼 과묵하고 점잖은 모습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식. 나중에 기억날만한 장면이겠구나, 하고 한 뼘 떨어져서 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왜 그런 순간들 있지 않나,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때가 생각날 거 같다고, 눈앞의 현재를 독자 내지 관객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순간.
아빠의 1주기를 앞두고 그날이 문득 떠올랐다.
아빠에 대해 추억할 수 있는 기억들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서러워진다. 붙잡고 싶은 기억들은 글로 적어둔다. 그리움은 축복이라고 박완서 작가님은 말했다. 예쁜 기억들은 열심히 붙들어본다. 난 엄마 아빠의 결혼식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