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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4장. 유경

by 김영웅

1부. 4장. 유경


두 번째 모임이 있던 날 아침, 유경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동수가 올린 댓글과 수정된 글을 읽었다. 전율을 느꼈다. 글에도 썼지만, 사실 유경은 글쓰기를 시작한 지 벌써 8년이나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그 내밀한 사실을 어제 올린 글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해버린 셈이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친한 동기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글쓰기의 힘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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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임신하기 전이었다. 유경은 그때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를 연년생으로 낳다 보니 삼십 대 절반이 날아가버렸고 직장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소중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는 있었지만,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행복을 느꼈지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와 마음이 휑했던 것이다. 저녁 늦게 퇴근하는 남편도 착하고 배려심이 깊어 불평할 게 하나도 없었지만, 차라리 이기적인 남편이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까지도 했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뭔가 마음속에 늘 걸려 있는 그 무언가를 옆에 있는 남편에게라도 불평과 함께 막 쏟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 남편 험담을 할 때마다 자기 남편을 흉보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만큼 유경은 평화 속에서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한 기분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유경은 현재가 행복하긴 하지만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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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알 수 없어 헤매던 어느 날, 유튜브 동영상 하나가 유경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글쓰기에 대한 짧은 동영상이었다. 그 영상이 딱히 유경의 상황을 정확히 대변하지도 않아 여전히 막연했지만, 유경은 그것으로 인해 어떤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갈급했던 것이다. 그 유튜브 강의는 글쓰기에 관련된 것이었다. 강사도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런데 뭔가 달라 보였다. 자신감이랄까, 떳떳함이랄까, 하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강사의 내면에서 조용히 분출되는 힘이었다. 유경은 그 힘이 부러웠다. 그 힘을 갖고 싶었다. 강의를 들어보니 강사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경과 비슷한 상황,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덧없이 흘러가는 것 같고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으며, 남편과 아이로 인해 행복하긴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은 갈급함이 늘 있었다고 했다. 강사는 ‘평화로운 감옥’ 같다는 표현을 썼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리고 유경은 그 강사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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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의 탈출방법은 글쓰기였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상황이지만 글쓰기 하나로 모든 게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답은 환경이 아닌 내 안에 있다고 했다. 내가 바뀌는 것이 답이었다. 그리고 나를 바꾸는 건 먼저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던 것이다. 그렇게 유경은 글쓰기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 뜨거웠던 마음도 오래가진 못했다. 거의 매일 새벽마다 글을 쓴답시고 시간을 확보하고 끄적거렸지만, 어느 정도에 이르자 자꾸만 제자리를 맴돈다는 생각에 다시 어떤 새로운 우물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벽시간의 글쓰기가 소중했지만 유경은 거기서 한 걸음 더 앞으로 전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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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를 만났던 그날, 유경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8년 전 그 유튜브 강의였다. 동수를 만나고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은 다름 아닌 데자뷔에서 오는 것이었다. 유경이 동수의 말에 진지하게 반응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경은 오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마음은 계속 늦은 오후에 있을 동수와의 만남, ‘글쓰다짓다’에 가 있었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왠지 동수와 효영과 함께 하는 ‘글쓰다짓다’는 유경의 삶에 하나의 등불이 되어 그토록 원했던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충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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