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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성실한 창작 수업

문지혁 저,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읽고

by 김영웅

다정하고 성실한 창작 수업


문지혁 저,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읽고


자조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제목이 특이해서 고른 이 책에 제대로 낚였나 싶었는데, 웬걸, 글쓰기를 막 시작하던 때완 달리 작법서의 효용에 대해 이젠 냉랭한 입장에 서 있는 내게도 이 책은 꽤나 유용했다. 시점, 이야기, 서사, 플롯, 묘사, 대사, 대화, 퇴고 등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위한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사항들을 친절하게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작법서들을 단순히 짜깁기한 듯한 고리타분한 인상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작법서들을 굳이 보지 않아도 이 책 한 권이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저자 문지혁 작가의 진정성 있는 개인 서사가 진하게 묻어 있다는 점, 그리고 전혀 교조적이지 않고 다정한 옆집 형(혹은 오빠)의 목소리로 들려진다는 점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다정함이 이긴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저자가 화려하게 어떤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작가 지망생으로 십여 년동안 고군분투했다는 점도 이 책에 진정성을 더욱 부여하지 않았나 싶다. 저기 저 위 빛나는 곳에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저 앞에서 들려오는 승리자의 소리가 아니라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안내자의 느낌이 드는 작법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유명 외국 작가들의 작법서들이 즐비하지만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거나 소설 창작의 기본적인 지식들을 습득하고 싶은 한국의 미래 작가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대학에서 다년간 강의한 저자의 이력은 물론 홀로 창작의 길을 외롭고 힘들게 닦아온 성실한 작가로서의 산 지식과 경험이 더욱 입체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자의 내공이랄까 여유랄까 하는 저력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이 글쓰기의 긴 여정에서 함께 한다는 위로와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선사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세 번째 에세이 ‘우동 거리 밖에서’가 인상적이었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다정한 선생님의 이미지였는데, 이 글에서만큼은 다정함 속에 숨은 뾰족한 가시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듯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 문단의 편향성과 획일성과 보수성에 쓴소리를 하는 글인데, 적어도 내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전통을 지키는 것과 시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채 관성만을 좇는 방식으로는 결코 건강한 문단 생태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저자가 가능한 톤을 약하게 하려 애쓴 흔적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저자가 조금 더 거침없이 글을 썼더라면 좋았겠다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문단의 이슈들이 대중적으로 좀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전국과 세계에 이름 없이 흩어져있는 한국 미래의 작가들이 미리 정보를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 덕분에 문지혁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법서만 쓰는 작가가 아니라 실제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에 그가 보낸 숱한 시간들이 그 소설 속에 오롯이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시작했으나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장편소설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해냄출판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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