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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의 맛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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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의 맛


한국으로 돌아오고 1년이 지나갈 무렵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이라는 독서모임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성사되었고 기적처럼 매달 열 명 안팎의 사람들이 1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모여 열다섯 작품이 넘는 도스토옙스키 선작을 함께 읽어냈다. 돌이켜보면 정말 꿈만 같았던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함께 했던 독서모임 가족들에게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감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에서는 매번 감상문 쓰기가 숙제였다. 숙제라는 단어가 거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은 함께 읽고 나누기 위해 서로에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라고 나는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책만 읽어도 그게 어딘데, 감상문까지 쓰라고 하면 어디 엄두가 나지 않아 이 모임이 지속될 수 있겠어?라는 생각도 결국 기우였음이 증명되었다. 모두들 살짝살짝 불평과 불만을 표현하면서도 꿋꿋이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만의 언어로 감상문을 작성해 오셨다. 절반 이상은 중고등학생 때 이후로 감상문을 쓴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 역시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능해지고 지속까지 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인간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신비한 존재인 것이다. 결코 단정 지을 수 없는 존재, 결코 절망하지도, 결코 희망만을 품지도 말아야 할 이 세상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싶다. 이 신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독서모임도 쉬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매달 열 편 안팎의 감상문을 모아서 글쓰기 측면에서도 조금 조언을 해주었고 작품 감상을 다른 각도로 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글로도 소통을 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충분히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모임 끝난 뒤 시간을 내어 각자의 감상문을 찬찬히 읽으며 다시 모임을 복기하고 글로 소통하던 그 시간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모든 시공간과 감상을 담아낸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각자의 감상문을 열 편 넘게 읽다 보니 이 사람은 글을 계속 쓰면 좋겠다 싶은 분이 두 분 계셨다. 그 두 분과 함께 '글쓰다짓다' 글쓰기 모임을 1년간 지속했다 (이번 달에, 그러니까 며칠 뒤에 종강이다). 총 스무 편 이상 글을 썼다. 나는 나름 선생 역할을 담당했는데, 나도 동일하게 같이 썼다. 글쓰기 선생이 이론만을 가지고서, 아니면 과거에 썼던 글만 가지고서 현재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진정한 선생은 함께 하는 자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컸었다. 그래서 나도 동일한 주제로 동일한 시간 내에 글을 썼고, 서로가 서로의 글을 평가했었다. 나는 선생이자 동료로 함께 했던 것이다. 아마 모두에게 아주 유익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두 분과 함께 글쓰기를 하다 보니 글쓰기 재료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읽기였다. 헤세 선작을 읽기로 했었다. 이것도 1년이 다 되어간다. 현대문학에서 출간했던 헤세 선집 열 권을 읽었다 (12월 초가 되면 마지막 작품 '유리알 유희'를 읽고 마무리한다). 감상문 쓰기와 오프라인 나눔 역시 한 달에 한 번씩 지속해 왔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의 후속 독서모임인 '인생책방'이 지난 9월에 첫 모임을 가지고 지난달부터 첫 작품을 끊었다. 11월 모임은 다음 주 목요일인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함께 읽어와서 나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감상문을 써오는 게 기본이며 오프라인으로 나눔을 가진다.


이렇게 해서 어쩌다 보니 도스토옙스키 선집, 헤세 선집, 그리고 인생책방에서 나눌 열 작품을 나로서는 재독을 하게 된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언제나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는 나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이 재독 프로젝트는 게을리할 수가 없다. 때로는 새로운 책을 한 권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편이 유익하다. 작품을 잘 선정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혼자서는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 독서모임을 하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감상문도 두 번씩 쓰게 되면서 한 작품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곱씹어보는 시간이 좋다. 이 맛은 초독 때의 맛과는 다르다. 새로운 책을 읽어나가는 걸 지속하는 가운데 재독 행위 역시 한 달에 한 권 정도 지속해 나가는 건 아주 유익한 것 같다. 벌써 2년 남짓 지속해오고 있는데 끊을 수가 없다.


모두에게 초독과 재독의 비율을 4 대 1 정도로 지속해 가는 방법을 권해본다. 나 같은 경우는 한 작가의 전작 읽기 위주로 해왔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물론 이 비율로 독서를 해나가려면 이미 초독을 마친 책 리스트가 충분해야 한다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이런 전제가 이미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독의 맛을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나는 꼭 느껴보시라고 맛보시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재독의 맛,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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