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잠 그리고 감사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 잠이다. 누군가에겐 이게 뭐 대수냐 싶기도 하겠지만, 불면증을 겪어본 사람은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워서 잠을 청하면 5-10분 이내로 잠들어 6-7시간을 내리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지.
미국에서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이 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2-3시간 마다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드는 것도 힘들었다. 6-7시간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정작 잠 자는 시간은 3-4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체력은 물론 모든 활력이 감소될 수밖에 없고 정신적으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불면증은 사람을 조용히 갉아먹는 쥐와 같은 것이다.
불면증은 읽고 쓰는 삶을 시작하고 나서도 좀처럼 치유되지 않았다. 덕분에 통 잠이 오지 않을 땐 침대에서 일어나 책을 읽다가 잠든 적도 많았지만, 책 읽는 게 치유책이 되진 못했다.
한국으로 오고나서 옆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2-3시간 마다 깨던 잠은 3-4시간 마다 깨는 것으로 향상되었다. 그래도 꼭 새벽 서너 시에 한 번 깨는 건 마치 계획된 일정 같았다. 심리적 안정감도 불면증의 완전 해소를 시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달리기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앞서 말했듯이 눈을 감고 금방 잠이 들며 눈을 뜨면 아침이다. 이 기분이 아침마다 나에게 얼마나 큰 감사를 불러일으키는지 모른다.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것. 이 기본적인 사실이 축복 중 축복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삶이 감사하다.
계속 달려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발견한 셈이다.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멀리했던 달리기가 나의 오래된 고질병을 단번에 치유하다니, 역시 인생은 뜻밖의 일들로 더욱더 깊고 풍성해지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닌 하게 되어지는 것들이 가져오는 이 뜻밖의 축복. 감사할 일 밖에 없는 것 같다.
어제는 몸이 가볍게 느껴져 속도를 조금 내봤다. 5키로 개인 최고기록이었다고 가민워치가 알려줬다. 6킬로미터 달리기를 이틀에 한 번은 하려고 한다. 이제 저 속도로 달려도 무릎이 아프지 않다. 몸에 전혀 무리가 되지 않고 다음날에도 달릴 수 있다.
속도를 내니 심박수가 올라갔다. 당연한 생물학적 원리이지만, 이 원리를 직접 뛰면서 체험한다는 건 또 다른 일이기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한다.
계속 뛰다 보면 저 속도에도 심박수가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낮아질 숫자가 기대된다. 이게 뭐라고 사람을 이리도 충만하고 감사하게 만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