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경이
그랜드 캐년 앞에 처음 섰을 때, 혹은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옆에 서 있을 때 나는 나의 존재가 개미보다, 아니 먼지보다 작다고 느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다름 아닌 경이였다. 그 느낌은 나를 압도했고 나는 그 순간 내 존재를 거뜬히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이감은 초월을 경험한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 순간 아주 짧지만 나는 불안도 느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경이를 만끽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불안을 넘어선 이후에야 경이를 만끽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내가 티끌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 나는 광활한 공간 속으로 내던져진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막연하고도 모호한, 낯선 감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직후 나는 곧바로 경이로 옮겨갔던 것 같다. 나는 홀로 내던져진 불안의 감정 앞에서 눈을 감지 않았고 오히려 똑바로 떴다. 어깨를 움츠리지 않고 오히려 가슴을 더 활짝 폈다. 그 순간 경이가 찾아왔다. 불안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를 가득 채운 건 경이 그 자체였다. 불안을 넘어서자 경이감에 흠뻑 젖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공포와 불안은 모두 위험에 대한 경고 신호이지만 둘은 다르다. 공포가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가진다면, 불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공포는 그 대상을 제거하면 사라지지만, 불안은 제거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늘 우리 곁에 머문다. 불안은 막연하고 모호한 감정에 가깝다. 우리가 살면서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건 그러므로 공포가 아니라 불안이다.
안전하다고 느꼈던 세계가 문득 그렇지 않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위험 신호를 감지한다.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런 순간마다 우리가 주로 일차적으로 하는 행동은 도피다. 동물적 생존 본능이다.
인간은 동물이다. 하지만 동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면 동물의 삶은 살 수 있을지언정 인간다운 삶은 살지 못한다. 인간에겐 본능 이상의 어떤 것을 따르는 삶의 방식이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나는 본능을 초월하는 행위 중 하나로 위에서 언급한 동물적 생존 본능에 따르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는 선택을 제안한다. 다른 말로 불안 앞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극복하고 끌어안는 단계까지 나아가라는 것이다.
경이는 언제나 불안 뒤에 있다. 불안을 넘어서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이다. 불안은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들의 일상에 널려 있다. 불안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불안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본능에 따르지 않고 경이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반드시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더 자주, 가능하다면 더 많이.
존재가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일상에서 더 자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면. 그러면 눈이 깊은 사람이 나는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