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틀을 넘어서다
직장 동료나 어쩔 수 없이 어떤 단체에서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뭔가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통한다는 느낌도 다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불편함이 동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동안 겪은 내 경험들을 종합해서 얘기해 보겠다.
전자의 경우 결국 관계가 단절될 확률이 높았다. 단절되기까지의 기간은 마치 서로 헤어질 이유를 찾기 위해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이 지속되었는데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중심을 잘 모르겠는 그런 엉거주춤한 느낌이랄까?), 그게 결국 일방적인 오해로 이어지고 그 오해를 풀려고도 하지 않은 채 끝나 버리는 경우였다. 이 관계는 의외로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서로 더 잘 통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어른스러움이랄까 유연함이랄까 하는, 좋게 말하면 처세술 혹은 아량이 넓은 인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못난이로 비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가 먼저 관계를 끊는 인정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후자의 경우는 느슨하면서도 질긴 관계가 형성된다. 특별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어떤 중대한 일이 생기면 상의하고 싶고 속내를 드러내어 다 얘기하고 싶어지는 관계에 해당된다. 이런 관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관계를 선호할 것이다.
문제는 전자의 경우가 어른 사회에서 빈번하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일이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리는 상황이 잊을 만하면 또 생기고, 또 잊을 만하면 또 생기는 반복이 끊임없이 그 빈도와 강도를 달리하며 발생한다. 이런 게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이런 관계에 서툴다. 나름대로 강단이 있어서 맺고 끊는 걸 잘하는 스타일에 속한다고 자부하지만, 겉과 속이 항상 같은 건 아니어서 나 역시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사람 때문에 잠을 설친다. 괴로운 것이다.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한 가지 답을 얻었다. 며칠간 계속 성장과 깨달음과 실천에 대한 글을 쓰며 마음속 고민들을 해소해 왔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나의 모든 고민의 전제는 ‘모든 사람은 성장을 원한다’였는데, 이 전제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왜 내가 이걸 놓쳤을까,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의외의 곳에서 답을 얻었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그렇다. 평생 알 속에서 깨어나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건 완전히 나의 틀을 넘어서는 사고였다. 이럴 수가!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들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내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영원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의 한계일 것이다. 또 한 번 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을 원하고 끊임없이 원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알 속에 있는 사람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나의 이런 마음과 지식과 경험을 원하지도 않고 군더더기 정도로 인식할 테니 말이다. 말하자면 체념이다. 나도 모르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신념을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편해지기로 한다. 날씨 얘기 정도는 나도 능통하게 잘할 수 있다.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