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샬롬)와 의(쩨다카)

by 김영웅

**'생각을 깨우는 히브리어 365'를 기반으로 하루에 하나씩 히브리어 단어를 배우며 진행해 나가는 나의 묵상 중 한 편을 소개한다**


평화(샬롬 שָׁלוֹם )와 의(쩨다카 צְדָקָה )


히브리어 ‘샬롬’은 한국어 ‘평화’, ‘화평’ 등으로 번역된다. 이사야 32:17에 따르면 평화는 의의 열매다 (새번역, 표준새번역). 이때 ‘의’는 ‘공의’로도 번역되곤 하는 히브리어 ‘쩨다카’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라고 번역한다.


쩨다카는 의, 공의로 번역되는데 내겐 이 한국어가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아마도 일상에서 사용하지도 않을뿐더러 한자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로 보면 조금 도움이 된다. 주로 Righteousness, Justice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의 의미는 '올바른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공의라는 뜻의 '쩨다카'가 구약에서 처음 나오는 구절은 창세기 15:6이다. KJV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And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for righteousness"


히브리어 원문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내가 히브리어는 읽을 줄도 모르고 문법도 모르니, 문장 순서를 영어로 옮긴 것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for righteousness to him and He accounted it in Yahweh And he believed"


창세기 15:6 전후 맥락을 살피면 이 구절에서 '그'는 아브람이다. 그래서 NIV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Abram believed the Lord, and he credi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개역개정에도 이렇게 되어 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개역개정만이 아니라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새번역 모두 쩨다카를 의로 번역했다. KJV나 NIV에서도 모두 righteousness로 번역한 그 단어다.


아브람은 주께서 자기에게 씨를 주지 않으셨으므로 상속자는 자기 집에서 길린 자가 될 것이라고 여호와께 말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렇지 않다고,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이 생길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이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여호와는 이를 의로 여기셨다.


인간의 수준으로 불가능한 것을 초월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신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초월적인 것을 믿는 행위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실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 의롭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사야 32:17과 연결 지을 때, 이런 의로움이 이루어질 때 임하는 것이 바로 평화인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하나님과의 평화가 임하고, 이웃들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이웃들과의 평화가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들과 상관없이 독식하고 군림하며 피라미드 상층부의 모든 관행을 다 누리며 구름 위를 사는 사람들이 누린다는 평화는 결코 평화라고 할 수 없다. 그 어떤 타자와의 관계도 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타자들을 자기 아래에 두고 이용하며 착취하면서 얻어내는 모든 유익은 평화와 상관이 없다. 타자와의 올바른 관계는 물질적인 것과 관련이 없다. 창세기 15:6을 다시 보라. 믿는 행위는 물질이 없어도 된다.


이 세상의 평화는 주로 폭력으로 얻은 산물이다. 월터 윙크가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서 말한 대로 초강대국 미국의 진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폭력이다. 그가 사용한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라는 문구는 날카롭고 의미심장하다. 구원이 마치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막강한 힘, 즉 폭력, 혹은 권력에 달려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은 폭력의 신적인 힘을 암묵적으로 믿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바로 그 폭력의 열매가 평화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더 큰 폭력을 행해야 한다고 은연중 우린 믿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폭력으로 이룬 평화로 경제력까지 얻어낸 국가가 바로 미국 아닌가.


평화라는 단어를 묵상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나는 다시 이사야 32:17과 창세기 15:6을 묵상하고 암송한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이사야 32:17, 새번역)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15:6, 새번역)


아멘이다. 평화의 올바른 정의를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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