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조용히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사람을 사랑한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일의 크기와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과정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스스로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는 사람이면 된다.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게 힘이 되고, 나도 모르게 또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며,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 것일 테다.
날씨 얘기를 주고받는 얕고 가벼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적당히 노력할 가치는 있다. 우리가 만나는 열 명 중 여덟 명은 이런 관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라고 해서 이런 관계 유지에 나의 모든 시간이 쓰인다면 나는 아마도 공중분해되는 기분을 느끼고 말 것이다. 꼭 필요한 건 나 혼자 만의 시간이다. 내가 주체가 되는 시간. 익숙했던 나를 벗어나 낯설게 나를 바라보며 성찰하는 시간. 조용히 무언가를 지속하며 자족하는 시간. 내공을 조금씩 쌓아가며 언제나 길 위에 서 있는 시간. 이런 시간들 없이 맞이하는 원만한 인간관계는 독이 된다. 나는 점점 더 없어지고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요즘엔 석유 파동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느리게 움직일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들리지 않던 소리들도 들린다. 여전히 이런 사소한 것들의 변화와 존재에 내 눈이 열리고 에피파니의 순간을 경험하는 내 모습이 좋다. 마음에 적잖은 위로가 된다. 아직 타성에 젖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어서, 아직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기뻐할 수 있어서.
성찰의 시간에는 나의 낮아짐을 경험해야 한다. 내가 어딘가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과 내 안에 어딘가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이 과정 없이 무언가를 주입하기만 하면 소화불량에 걸리듯 나의 내면은 모순 투성이가 될 것이다. 내 안의 공허와 어두움을 인지하는 것.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시작이어야 한다. 배움은 언제나 그다음에 따라와야 한다. 성찰과 깨달음 없이 누적되는 지식은 공허할 뿐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공을 다지고 나와 타자와 세상에 대한 시각의 영점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임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이 모순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