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상처받은 사람들’을 읽고
상처받은,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상처받은 사람들’을 읽고
최근 몇 년간 도스토예프스키를 후기 작품부터 시작해서 열 편 이상 쭉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의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어버렸다. 아니, 매료되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읽은 그의 작품보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의 분량이 현저하게 적어져 버린 지금, 남은 작품들을 아껴서 읽게 되고, 읽을 때면 사뭇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되는 나를 보면 나는 단순히 한 작가의 글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끼고 경외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하는 독자가 되어버렸다.
워낙 유명해서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그나마 한국인에게 알려져 있는 작품은 흔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후기 작품에 한한다. 이른바 4대 장편, 혹은 5대 장편이라 불리는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4대 장편에선 빠진다), 그리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주위에선 이 대표작을 다 읽은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중기 작품들을 읽는 사람은, 아니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극소수에 속한 도스토예프스키 마니아이기도 한 셈이다.
이 작품 ‘상처받은 사람들’은 중기 작품에 속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인해 극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시베리아 유형생활과 군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기간과 다시 작가로서의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기까지의 수년간의 준비기간을 중기로 보는데, 이 작품은 그가 제대하여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오고 2년 뒤에 출간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작품에서는 뜻하지 않은 약 10년 간의 삶을 살게 된 이후, 작가로서의 재기를 꿈꾸며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다작을 하던 그의 조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느껴진다. 후기 작품에서 탁월하게 드러나는 노련미보다는 다분히 엉성한 구성과 투박하고 상투적인 이야기 전개가 도드라진다. 후기 작품을 모두 읽은 나에겐 거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해서 여전히 즐거운 독서였지만, 아무래도 도스토예프스키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추천하긴 어려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비록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인물들이 다른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그들을 창조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깊고 예리하고 시선은 마치 숨길 수 없어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처럼 이 작품에서도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빛을 발한다. 통속적인 상황 속에서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심오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그의 탁월함은 그의 모든 작품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것들은 발견하는 자의, 아니 그를 사랑하는 독자의 몫 이리라.
특히 이 작품은 일인칭 시점으로 써졌는데 화자이자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난한 생계형 작가로 그려진다. 비록 일부분이겠지만, 자서전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기기도 한다. 그의 모든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라고 할 수 있는 가난, 돈, 치정 문제는 여기서도 당연하다는 듯 다뤄지고 있다. 작품 속에서 악인의 대표 격으로 등장하는 공작의 모습 속에서 나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악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갑의 자리에 서서 선하고 약한 자들을 괴롭힌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을 때면 언제나 그렇지만, 이 작품 속에서도 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설 수밖에 없었으며, 그에 대한 대답을 이리저리 시도해 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면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을 또다시 맞이해야 했다. 너무나 현실 같아서, 너무나 내 주위에서 일어난 일 같아서 중간중간 페이지를 전광속화처럼 넘기며 흥분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어찌나 이렇게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깊이 꿰뚫고 그것을 정확하게 활자로 그려낼 수 있는지, 매번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도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작품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무대는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상처를 품고 있다. 가난한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의 대비, 악하고 이기적인 사람과 선하고 도덕적이며 고결하기까지 한 사람의 대비는 이 작품만이 아닌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전반적인 갈등 요소이며, 이것들은 약한 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때론 영혼 깊숙이 각인되어버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평생 남기게 되는 상황을 유발한다. 누군가는 가난 때문에, 누군가는 버림받은 사실 때문에, 또 누군가는 (주로 이에 해당한다) 가난과 여러 복합적인 절망적 요소들이 층층이 쌓여 고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권선징악의 패턴이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나타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악인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돈과 명예를 가진 공작과 같은 신분에 속한 갑들이 악한 마음까지 가지게 될 때는 그들이 아무리 도덕적인 결점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본인이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은 변함없이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죽을 때까지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현실인 것이다. 도덕적이고 고결하고 선하다고 해서 가난했던 삶이 나아지지도 않고, 그들이 잠시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보기 좋게 한방을 먹여도 대세는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 끊이지 않는 순환이 바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러한 현실의 단면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려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처받은 사람들 곁에 서서 비록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과 연대하고 그 삶 속에서 고결한 인간다움을 간직한 채 살아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편리한 삶을 영위하다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인생이 아닌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산다 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시간을 인간다운 인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에서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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