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요즈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아내가 어제 갑자기 옛 사진을 보고 싶어 했다. 한국 들어오기 직전,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던 수백 장의 사진과 동영상들을 하나의 외장 하드에 모아 놓았기에 나는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아내의 부탁에 응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함께 훑어보며 우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처음 만났던 2002년 8월부터 함께 찍히기 시작했던 사진은 20년이 지난 현재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3년 가까이 연애하던 우리는 2005년 겨울 부부가 되었고, 그로부터 4년 뒤 우린 셋이 되었다. 사진과 동영상의 개수는 바로 그즈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태어난 그날부터 아이의 성장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을 빨던 사진, 간질 발작 이후 병원에 입원했던 사진, 간질 약을 먹고 노인처럼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진, 기적처럼 완쾌되어 돌을 맞이하고 순조롭게 잔치를 하던 사진, 쉬지 않고 재잘대고 노래하고 음악이 나오면 곧장 춤을 추던 사진. 아이 특유의 순수함에 우린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다음 폴더에 저장된 사진의 배경은 미국으로 바뀌었다. 클리블랜드 시절 아이는 3살 채 되지 않았다. 3살이 되었을 때 아이는 거의 1년 간 한국에 있는 할머니/할아버지 집에 머물렀고, 4살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5살이 되고 몇 개월 후 아내는 매칭 결과 레지던트로 수련받기 위해 보스턴으로 가야만 했고, 우린 3년 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있는 노력 없는 노력 다 해서 간신히 우리가 인디애나를 거쳐 이사했던 캘리포니아에서 펠로우로 일할 수 있었다. 덕분에 2년 간 다시 우린 셋이 함께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을 아내는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에 가 있어야 했고, 아이와 난 또 미국에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덧 2022년 현재로 다시 맞춰져 있었다. 쏜살같은 20년이었다.
그사이 아내와 내 머리에는 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머리숱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가까운 것들을 잘 못 보게 되었다. 반면,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마치 우리의 시간을 그대로 가져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린 다시 셋이 되었다.
이런저런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들을 마주한다. 자고로 문제는 생기게 마련이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잘못된 일, 기대하지 않은 일,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잘 알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마음.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
수백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 한 가지는 나의 모자람이다. 그 시절 내 눈은 현재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미래도 과거도 아닌 불명확한 어딘가를 향해 있는 듯해 보였다. 달라져야 한다고 느낀다. 현재를 보다 만끽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