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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09. 2022

파국의 전조

파국의 전조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객관성 상실이다. 이는 주로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들 사이의 비밀스럽고 긴밀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시간이 갈수록 최측근들은 거짓 충성으로 일관되고 독재자의 하수인인 된다. 이들은 주로 거대한 이야기 하기를 즐기며, 독재자의 생각을 자기 생각처럼 떠벌리기 좋아하며 (빙의), 자신이 측근이라는 사실을 가문의 영광이라도 되는 듯 뿌듯해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실제 고민으로 다가가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국민들 개인의 몫으로만 떠넘긴다. 균형을 잡아줘야 할 자리에 있는 자들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그럴듯한 논리를 들이대며, 자신이 이미 얻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안테나를 사방팔방에 설치하여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측근들 서로 간의 알력은 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첨예하다. 등잔 밑에 놓인 시한폭탄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측근들의 거짓 충성에 길들여져 자신의 능력에 한껏 취한 독재자는 국민들의 고민을 들어줄 여력이 없을 만큼 점점 무능력해지지만, 자기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다. 측근들의 조작된 보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만 따르면 미래가 완벽히 보장될 것처럼 독재자는 기만을 계속 일삼는다. 허구한 날 과거의 영화와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에 들떠 있지만, 정작 손에 쥐고 있는 현재의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포부와 비전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으며, 단순한 정황만을 가지고 그것이 사실이자 현실인 것처럼 과장하게 된다. 그리고 행동보다 말이 빠른 상황이 계속되다가 결국 말만 남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법과 제도, 정의가 존재하고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강자가 아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강자들과 기득권 세력은 자신이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우며,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다고 믿기 쉽다. 어려웠던 과거는 스스로 세탁하고 자신의 방법을 과도하게 일반화시키며 과신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자기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해석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파국의 전조다.


이런 패턴은 독재정권만이 아니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이끄는 작은 모임에서도 유효하다. 결국 사람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사실이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스타 목사들의 활보가 극대화될 땐 대기업과도 같은 대형교회의 탄생과 유지가 가능해지지만, 그 자리가 비게 되면 우후죽순으로 무너지기 일쑤다. 성령의 역사라고 믿어왔던 행보들이 모두 스타 목사로부터 떨어지는 이득에 눈먼 약삭빠른 자들의 거짓된 행위들로 판명 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 교인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며 잠시 혹은 영원히 교회 공동체를 등지기도 한다. 믿었던 존재와 몸담았던 공동체로부터의 배신, 그리고 진리인 줄 알았으나 그것이 반진리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어지간한 사람은 견뎌내기 힘든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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