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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13. 2022

침투하는 빛

침투하는 


축복이란 당당하게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장군의 모습이 아닌, 문틈에 난 작은 균열을 통해 침투하는 빛으로 찾아온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아닌 세미한 음성으로, 폭풍우가 아닌 가랑비로 어느새 우리 곁을 찾아온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도 오늘이 어제와 다를 수 있는 이유 역시 나는 이러한 균열들 덕분이라 믿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런 균열을 원하지 않는다. 균열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 즉 부서졌거나 망가졌다는 이미지가 떠올라 현 상태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게으름과 그 상태가 발전할 필요가 없이 최고이고 최고여야만 한다는 은연중 믿음에 기인한다. 이는 정착 기간이 길어질 때 인간이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균열’ 대신 ‘통로’라고 하면 어떨까. 누군가는 편안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균열’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불청객의 이미지인 반면, ‘통로’는 무언가 예상되고 준비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귀한 손님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시간이 배제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단점을 지닌다. 균열이라 확인되는 시점은 현재인데 반하여, 통로라 인정되는 (혹은 깨닫게 되는) 시점은 언제나 미래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관찰과 성찰을 통과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소중한 통찰 중 하나가 나는 ‘균열을 통로로’ 볼 수 있는 눈, 그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이는 미래를 현재로 앞당기는 행위이며, 비로소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삶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밤 나는 내 삶에 생긴 예상 밖의 균열들을 하나씩 살펴볼 작정이다. 그것들을 통해 침투하는 빛의 존재를 감지하려고 애써보려 한다. 침투란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그 무엇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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