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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15. 2022

나를 넘어서

나를 넘어서


오르기 힘든 산에 오르면 무엇이 보이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자연이 제공하는 절경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것들을 창조한 존재를 찬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시선을 내부로 돌려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동안 잘 돌보지 못했던 벌거벗은 자아를 대면하고 깊은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비단 힘든 산행만이 아니다. 모든 육체적 고행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요컨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다. 


진정한 나를 대면하는 경험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벅찬 감정과 깨달음의 홍수에 잠기게 만든다. 그리고 이 경험은 중독성이 있어 또 경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들게 만든다. 살면서 어쩌다가 마주친 낯선 경험 이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한다든지, 주위 사람들이 바라볼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하는 일련의 현상들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 경험이 그렇듯 이러한 것도 시간이 흐르며 사그라든다. 그때의 뜨거웠던 감정도, 폭풍 같던 위로와 회개도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단순 반복으로는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산행이 힘들어지고 귀찮아지며, 일련의 고행과 수련이 육체만 아프게 할 뿐 부질없는 일로 느껴지게 된다. 어지간한 힘겨움으로는 더 이상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산행도 고행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을 느끼며 착잡한 심정이 된다.


나는 진정한 나를 대면하는 경험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시도들을 반대하거나 막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직접 경험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세상엔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점검해 볼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바쁘고 무질서한 삶의 패턴을 고려할 때, 나는 이런 경험을 오히려 독려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단,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대면했다면, 절대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서 말이다. 


어떤 방법을 통하든 진정한 나를 대면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도 하나의 과정임을 알면 좋겠다. 아무리 폭풍 같은 전율을 느꼈다 하더라도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덧붙여,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알게 되는 모든 과정의 차후 방향을 스스로에게 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아는 건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를 제대로 넘어서기 위해선 나를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남에게로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여전히 공동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말 이루기 힘든 말이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때 인간에겐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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